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Jan 10. 2023

배고플 때 선택을 강요하는 건 어리석다

#판사의 판결 오류 #의지력 #자기 통제력 #자아 고갈 이론

유튜브 동영상 <논문 읽어드립니다>란 코너에서 아주대 김경일 교수가 읽어준 논문 중 "법률적 결정에 관한 무관한 영향"이란 논문 내용이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법률적 결정에 무관한 영향>이라는 논문을 보면 판사들이 하는 판결의 오류를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논문은 제목 그래도 판사의 법률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 외적인 영향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들이 볼 때 모든 직업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판단을 하는 직업이 판사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판사들 또한 판결을 하는 데 있어 심각한 오류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한 교수는 판사들의 가석방 심사의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가석방이란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고 수형 중에 있는 사람이 그 행장(行狀)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뚜렷하여 나머지 형벌의 집행이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일정한 조건 하에 임시로 석방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우리들은 흔히 가석방으로 풀려난 죄수들을 모범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생각이 옳은 걸까요?


물론 예상하신 것처럼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1,112건의 가석방 사례를 분석한 결과 1/3은 '수락(approved)'이 되었고, 2/3는 '기각(rejected)'이 되었는데 시간대별로 수락과 기각 현황을 확인해 보니 공통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시간대별로 가석방률 추이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시간대별로 가석방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올라갔다 내려가는 급격한 하락 변곡점에는 공통점이 한 가지 발견되었는데 그 시간대는 다름 아닌 판사들의 간식 시간과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출처 : Pixabay


오전에 시작하면 가석방률이 점차 올라가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 곡선을 그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석방률이 올라가는 지점이 있는데 그게 바로 판사들의 간식 시간대인 9시부터 10시 사이라고 합니다. 이후 11시부터 점심시간 때까지는 가석방률이 떨어지다가 점심 먹기 전에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가석방률은 평균 35%대이지만 식사 후에는 65%로 상승했다가 퇴근할 때쯤이면 0%까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시점에 따라 극명하게 가석방률이 갈린다는 것이죠. 무언가를 먹은 후 포만감이 생기면 가석방 승인 확률이 높아집니다. 식사 전에는 보류나 기각이 대부분인데 그때는 체력과 정신력이 최저점으로 떨어지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심을 먹은 후 포만감이 생기면 다시 가석방률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가석방률이 다시 떨어집니다.


이런 패턴은 무한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구의 결론은 아무 상관이 없는 업무 외적인 요인, 즉 배고픔과 배부름이 판사들의 법률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풍부한 판사들조차 예외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 연구 결과를 본 많은 판사들은 자신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는 후문이 들립니다. 이렇듯 우리들은 의사결정과 선택에 있어서 수많은 외부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지력과 같이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통제력의 경우 무한정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한정된 자원 내에서 쓸 수 있다는 것이죠. 한 마디로 자원, 즉 의지력이 고갈되면 자기 통제력도 고갈된다는 겁니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몸속의 포도당과 같은 에너지원이 고갈되면 의지력과 같은 자기통제력도 고갈된다는 내용의 '자아 고갈 이론(ego depletion theory)'을 처음으로 주창했습니다. 실험에서 자기 통제력, 의지력을 사용할수록 혈당 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계속 참다 보면 어느 순간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르게 되고,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의 유혹을 참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데 이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 통제력과 같은 자원은 무한정 존재하지 않는 한정된 자원입니다. 자기 통제력을 사용할수록 자원이 고갈이 되며, 자기 통제를 위한 에너지는 보충이 되지만 고갈되는 속도보다는 느리다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반복되는 음식 광고에 쉽게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아 고갈을 통한 의지력을 무너뜨리기 위함입니다.


흔히 배가 고플 때 쇼핑을 가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당연히 배가 고프면 사지 않아도 될 먹거리를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돈이 없어 좋아하는 의류를 사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다 참다 인내심이 폭발하면 지름신이 강림하기도 하죠. 그러므로 의지력이나 자기 통제력이 떨어질 때는 포도당이 포함된 에너지원(자원)을 섭취해야 하고, 먹은 후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의지력을 만들 시간을 줘야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상태로 회복이 되는 겁니다.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짤


판사의 법률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 외적인 영향은 '자아 고갈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심사하는 가석방 서류가 증가할수록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원이 고갈되어 '승인'보다는 '기각'을 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죠. 간식을 먹거나 식사 후에는 다시 포만감, 즉 에너지원이 보충되어 '기각'보다는 '승인'을 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렇듯 인생의 중대한 결정이나 선택을 할 때는 자아가 고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음식이나 휴식을 통해 충분히 자원을 회복시킨 후 결정이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죠.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자아 고갈 이론을 활용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상사에게 결재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그럼 언제 결재를 받아야 서명을 받을 확률이 높을까요? 정답은 아침 일찍 결재를 받거나 아니면 점심 식사 또는 간식을 먹은 후 결재를 받는 게 가장 시의적절한 타이밍이 될 겁니다. 그런데 가끔 상사가 퇴근할 때를 맞춰서 급하게 결재 서류를 서명 받는 경우가 있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자아 고갈이 가장 심한 시점이기 때문에 내용이 좋아서 결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귀찮고 빨리 퇴근하고 싶어서 결재를 하는 것이죠. 현명한 상사라면 당연히 퇴근할 때 부하가 결재 서류를 들고 뛰어올 때는 "내일 다시 봅시다"라고 얘기할 겁니다. 만약 상사가 지치고 귀찮아서 사인을 한다 하더라도 익일 출근 후 어떤 형식으로든 뒤끝이 작렬하게 될 겁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똑같은 에너지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몸과 마음의 기능도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중대한 선택이나 결정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최대한 에너지원을 충전해 놓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은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습니다."

"항상 잘 먹고 잘 쉬도록 합시다."



뭐 먹을지 고민될 때 부르는 노래 (by TIKITIK)





작가의 이전글 인간은 정말 생각하는 갈대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