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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r 01. 2021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느끼는 분들께

새로움은 주관적 시간을 왜곡시킨다

https://youtu.be/4EuzYM9YT_I


퇴근 시간 전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집에만 오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쉬고   

평일 일과 중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주말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자고

그냥 시간이 똑 같이 흘러가기만이라도

좋은 순간만은 천천히 사랑의 꿈에 취해 뒤척이는 밤이라도

당신과 함께 순간만은 천천히

당신과는 천천히

당신과는 천천히


장범준의 3집 <당신과 천천히>의 가사 내용이다. '평일은 느리게 가는데 주말은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라'라는 가사가 샐러리맨들의 가슴을 후벼 팔 정도로 공감이 간다. 주말뿐만 아니라 휴가도 정말 빨리 지나간다. 모든 휴가나 여행은 가기 전날이 가장 설레고 행복하다고 하는데 정말 공감이 간다. 행복한 순간은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갈까?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 나이인 학창 시절에는 사소한 외부 환경에도 모두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처음 해외여행을 간다면 공항에서 수속하는 절차부터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는 순간들을 모두 개별적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익숙해지면 공항에서의 귀찮은 절차와 지루한 비행시간은 '해외여행 절차'라는 큰 묶음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같은 여행을 해도 모든 경험을 개벌적으로 경험하는 사람과 묶음으로 기억하는 사람의 시간의 지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TV를 보다가 지긋이 나이 드신 한 여성 노인분께서 "눈을 감고 떠보니 벌써 90세가 되었다"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팔순이 넘는 엄마도 요즘 "야야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눈 떴다 감으면 저녁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의 고사처럼 나 또한 요즘 내 인생이 정말 꿈인 듯 생시인 듯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20대는 20km, 30대는 30km, 40대는 40km..... 나의 시간은 현재 50km로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체감 속도 때문에 인간은 한 세기를 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가끔 빨리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잠도 못 이룰 때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시간을 빨리 흐르는 것일까?



칩 힙스와 댄 힙스가 지은 《순간의 힘》을 보면 도르트 번첸(Dorthe Berntsen)과 데이비드 루빈(David Rubin) 연구진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과거를 떠올렸을 때 가장 선명하게 남는 기억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설문 결과 자녀의 출생, 결혼, 초등학교 입학, 대학시절, 연애, 누군가의 죽음, 퇴직, 부모로부터의 독립, 부모의 죽음, 생애 첫 직업 등 총 10가지의 답변이 나왔다고 한다.


답변을 분석해보면 10가지 중 6가지가 15~30세에 일어나는 일이며, 대부분 생애 전반부에 발생하는데 이를 '회고 절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떻게 20%로 안 되는 짧은 세월이 우리 기억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는 것일까? 


회고 절정의 핵심은 바로 '새로움'이다. 다시 말해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결혼, 육아, 대학시절 연애, 부모로부터의 독립, 퇴직 등 두 번 다시 경험하기 힘든 매우 새로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살면서 주변 사람들이 겪는 '핵심 사건(critical incidence)'들은 많이 보아왔지만 본인이 직접 경험하는 핵심 사건은 매우 강하고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다. 간접경험과 직접 경험의 간극이 큰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듯 자신의 인생에서 커다란 핵심 사건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을 인생의 핵심 사건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결정적인 순간(순간의 힘)이라고 말했다. 혹시 결혼식장에서 식을 올리는 순간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흘러간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1995년 심리학자인 피터 맹건(Peter Mangan)은 무척이나 명쾌하고 단순한 실험을 했다. 그는 19세에서 24세 사이의 학생 25명과, 60세에서 80세 사이의 노인 15명에게 각각 어림잡아 3분이 지난 후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젊은 학생들은 평균 3분 3초 만에 버튼을 눌렀던 반면, 노인들은 평균 3분 40초 후에 눌렀다. 이것은 시간 경과에 대한 지각이 뇌 회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Paul Janet)는 10세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50세의 사람은 50분의 1로 느끼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으로 지각한다고 보았다. 이를 '시간 수축 효과'라고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지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새로운 경험이 활발한 젊은 시절에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면서 기억 속에 선명하게 저장되고, 기억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시간이 매우 더디게 가는 반면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경험은 매우 약해지고, 기억의 밀도는 낮아지면서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듀크대 기계공학 에드리안 베안(Adrian Bejan) 교수는 우리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있는데 하나는 '물리적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시간'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물리적 시간은 누구나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심리적 시간은 어린 사람과 나이 든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다르게 흘러간다고 말하면서 시간의 수축 효과를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의 불일치에서 연유한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어릴 때는 이미지를 빨리 처리하는데 나이가 들면 처리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빠른 이유가 바로 이미지 처리를 빨리하기 때문이다. 일상이 반복되면 새로운 저장 정보가 없어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시간의 밀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베일러 의대의 바니 파리야디와 데이비드 이글먼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일련의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사진을 일정 시간 동안 보여준 다음 사진을 보여준 시간을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세 번 갈색 구두 사진을 보여주고 그다음 알람시계 사진을 보여주었고, 그 이후 세 번 갈색 구두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진을 보여준 시간을 측정하였다. 


결론은 알람시계를 보여준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졌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이미지가 노출된 시간은 동일했다. 이것을 '괴짜 효과'라고 불렀는데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갈색 구두에는 뇌가 반응하지 않고, 새로운 이미지인 알람시계에는 뇌가 활성화되면서 기억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즉, 기억의 밀도가 높아진 것이다. 밀도가 높으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결론적으로 '새로움은 주관적 시간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45미터 그물망 떨어지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실제보다 30%가 실제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번지점프를 할 때도 우리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듯 새로움은 주관적 시간을 왜곡시킨다. 기억의 밀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예전 나는 젊은 시절 조수석에서 앉아 자동차를 타고 가다 앞에 있는 화물차를 앞지르기 위해 오르막길에서 이차선을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다가 맞은편 화물차와 충돌해서 차가 대파된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사고 직후 큰 충격으로 한동안 숨이 멎고 정지되는 느낌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순식간에 지나갔고, 마침내 나는 한참 후(?)에 겨우 호흡과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40초간의 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만은 기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영화 <버킷리스트>는 시한부 노인들 2명이 나오는데 한 명은 부자이고 한 명은 가난한 노인이다. 두 명의 노인은 병실에서 친해지면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되고, 두 명은 버킷리스트를 실제로 하기 위해 병원을 나선다. 


죽기 전에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줄이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경험뿐인 버킷리스트는 시한부 노인들의 생체 시계를 길게 늘여준다. 이처럼 주관적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움은 주관적 시간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다소 느리게 만들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배움도 좋고, 취미도 좋고, 여행도 좋고, 봉사도 좋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면 새로운 경험도 많이 만들고 아이들의 창의적 사고도 많이 높아진다. 평소 안 가던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음식도 매일 습관적으로 먹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들을 많이 먹고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기억의 밀도가 높아지고 시간의 길이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한 또 하나는 바로 새로운 자극을 만드는 것이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면 익숙한 환경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상황으로 인식하고 바라보면 된다. 겨울에 눈이 내리더라도 '눈이네!'가 아닌 '눈이 오니깐 오늘은 눈 사진을 찍고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라고 상황을 재인식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즉 반복적인 일상을 다르게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은 지루한 인생을 새로운 경험으로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직업이든 배움의 영역이든 예전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도전하는 것도 좋다. 만약 베트남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고 싶었지만 여태껏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다면 은퇴 후 베트남으로 가서 어학연수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일 년이 마치 10년처럼 느껴질 것이다. 기억하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고, 경험해봐라.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우리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기 때문에 시간은 늘어난다. 기억의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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