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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r 15. 2021

'1미터 반경의 삶'을 보면서

관점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사회

언론인 구독자 수 1위를 자랑하는 '체헐리즘'의 남형도 기자가 쓴 '시골 개 체험' 기사를 우연하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게 되었다. '뭐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리얼한 기사였다. 그는 1미터 개 목줄과 함께 1일 '시골 개' 체험에 돌입했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3살 수컷 멍순이(?)와 함께 하루를 온전하게 보내면서 시골 개의 관점에서 느낀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선물로 가지고 온 강아지 인형에 개신나는(?) 멍순이는 우주의 온 기운을 몰아 기자를 반겼고, 정오에 영하 6도의 추위를 넘나드는 날씨에 차디찬 흙바닥에서 먹는 점심은 삼키기 힘들었다. 매일 1미터 반경에서 보는 멍순이의 삶은 큰 변화가 없었다. 바람, 새, 나뭇가지, 비닐이 내는 소리와 함께 하루 종일 같은 풍경은 단조로웠고, 해가 궤적을 그리는 것을 다 본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한 기자는 멋진 풍광도 지겨워 결국 눈을 감았다고 한다.


 세상 너머에 더 크고 재밌는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오후 늦게 멍순이와 나간 산책은 멍순이를 천방지축 날뛰게 했다. 밤이 되자 칼바람은 부어왔고, 주간의 지루 함마저도 사치였을 만큼 칠흑 같은 밤, 가끔 오던 차 불빛도, 사람도 다 멈추고, 가로등 불빛 하나만 위로하는 적막한 밤, 울어도 누구 하나 대답 없는 외로운 밤, 긴 어둠의 통로를 지나서 다시 일어나면 또다시 펼쳐지는 광경,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틀 안에서 또 하루를 견뎌내야 할 1 미터의 삶은 계속 반복된다.


"짧은 줄에 묶여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과 직접 묶여보는 건 정말 많이 달랐고, 삶의 반경이 제한된다는 것은 신체적인 걸 넘어 심리적 좌절까지 겪게 한 힘든 경험이었다"라고 기자는 말했다. 너무 무기력해져서. 흑백사진처럼 단조롭기 짝이 없었던 하루에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기억. 그건 멍순이와 산책했던 1시간뿐이었고, 칼바람에 털이 휘날리게 뛰다 돌아봤을 때 웃고 있었던 녀석의 얼굴, 그건 차마 잊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원래 시골 개들은 그렇게 길들여져 왔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삶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시골 개 체험 기사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반려견, 시골 개와 들 개는 모두 똑같은 개들이지만 사는 환경은 너무나 차이가 크다. '사람을 좋아해 꼬릴 흔들고, 맛난 간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산책을 하면서 별난 냄새를 맡으면 행복해하는 여느 반려견과 다를 것이 없다'라는 기자의 말은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멍순이의 삶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었다. 금번 기사는 시골 개를 바라보는 내 관점의 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고 백명의 관점이 다 다르다. 각자 살아온 삶의 경험과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frame)에 따라 해석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관점이 바뀌면 해석이 바뀌게 되고, 해석이 바뀌면 마음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관점의 변화는 삶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만들 수 있다.


《관점을 디자인하라》의 저자인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교수는 "관점을 바꾸기 위해서 당연함의 틀과 고정관념을 깨야 하고,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라고 그의 책에서 말했다.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는 15년 만에 풀려난 후 드디어 만난 이우진과의 대화에서 "왜 자신을 15년 동안이나 가두었을까?'가 아닌 왜 15년 만에 풀어주었을까?라고 질문해야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을 했다. 계속 틀린 질문만 하니 맞는 질문이 나올 수가 없다. 이렇듯 관점의 변화가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장은 '물건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일본의 이세탄 백화점은 매장을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닌 '고객이 물건을 사는 곳'이라고 관점을 바꾸자 서비스에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1년 일본의 아오모리에 기록적인 태풍이 불어 수확을 앞두고 있던 사과의 90%가 떨어져 과수 농사를 짓던 모든 사람들이 지쳐서 큰 실망을 하고 있었다. 그중 어떤 사람이 여전히 붙어있는 10%의 사과를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합격 사과'로 포장해 10배 이상 가격으로 수험생들에게 판매해 손실을 만회했다고 한다.


장님이 길거리에서 'I'm blind, Please help' (나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문구가 적힌 종이로 구걸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여인이 다가와서 'It's beatuful day and I cant' see it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로 수정을 하니 갑자기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숲도 나무도 한꺼번에 보지 못한다. 우리의 주의력과 인지력은 한계가 있고, 주의력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매우 크다. 이러한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관점을 의심하고, 재해석해야 하며,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멍순이는 태어날 때부터 줄여 묶여 '학습된 무기력'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반려견은 집에서 키우고 사람처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시골 개 멍순이의 '1미터 반경의 삶'에 대해서는 무덤덤하고 무감각하다. 무엇인가 작은 변화의 날갯짓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번 기사를 통해 모든 시골 개들의 거주 환경과 개들의 양육 환경을 개선하는 나비효과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시골 개 산책시키기' 캠페인부터 시작하고 동참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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