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업생들에게 가장 부러운 것, 한 가지를 물어보면 '태풍'이라고 대답을 한다. 태풍은 '진로'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졸업과 취업이 여느 때보다 큰 근심거리가 되어 버렸다. 대기업들은 공채 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채용하지 않는 곳도 많아졌고, 취업생들은 모두 공시생으로 몰리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조바심이 생기고, 시야도 좁아진다. 열심히 해도 뿌듯한 감정은 사라지고, 불안감만 엄습한다.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차선이 최선이다
우리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배웠다. '차선'이라는 말은 배우지도 않는다. 정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답인가? 물론 가능하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인사말도 요즘은 '밥 먹었나요?', '안녕하세요?'가 아닌 '많이 바쁘시죠'로 바뀌었다. 바쁜 정도가 이제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많이 바쁘다'는 의미인 것이다. 사실 바쁜 사람은 더 바빠진다.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삶에는 네 가지 선택의 카드가 있다. '최선', '차선', '차악', '최악'이 바로 그것이다. 최선은 시작부터 고민을 동반한다. 고민도 '비용'이기 때문이다. 열 가지 선택 중 한 가지 선택만 잘 못해도 마음은 불편해지고,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보다는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은 늘 완벽하고 만족한 결과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걱정과 불안감이 항상 따라다닌다.
태엽도 끝까지 감으면 '뚝' 부러진다. 우리 맘속에는 경력이 흠집이 생기거나 실패를 하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다 보니 삶이 빡빡하고 여유가 없고, 스트레스가 많이 유발된다. 초조, 불안감, 심장의 두근거림, 짜증은 '그만 쉬어야 해', '더 무리하지 마', '잠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 '안 멈추면 큰일 날 거야'라고 몸과 마음이 내게 보내는 신호다. 몸은 뇌의 명령을 받지 받지만 뇌도 몸의 명령을 받는다. 인위적으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면 상대방의 호감도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럴 때는 빨리 생각의 과잉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회복 환경에 들어가야 한다.
삶이 네 가지 선택 중에서 제일 먼저 '최악'을 제거해야 한다. 그럼 남는 것은 '차선'인데 어쩌면 그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 즉, '차선'을 오래 하면 '최선'이 된다. 30년간 라디오 정통 팝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을 맡아왔던 라디오 공무원(?) 배철수 씨는 "운이 좋았고, 건강했다. 그래서 한 번도 펑크나 지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다음에는 성실함이었다"라고 그의 장수 비결을 라디어 인터뷰에서 겸손하게 밝혔다. 어떻게 보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선택이었고, 그는 이제 '최고'가 되었다.
최고가 되고자 마음먹는 것만큼 스트레스가 만땅으로 찾아오는 경우는 없다. 선택 시 60점이 넘으면 만족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족 지향자'가 '최고 지향자'보다 마음이 편하고, 오래간다. '최고 지향자'는 더 잘하기 위해 계속 고군분투해야만 한다. 직장에서 보면 '만족 지향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정시에 퇴근해서 일과 업무의 균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워라벨'의 균형은 불완전의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이너프(enough)'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타인의 불완전함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런 태도는 타인과의 공감, 유대감을 더 강화시킨다. 어차피 인생은 불완전하다. 내가 아무리 안전운전을 해도 맞은편 차량이 중앙차선을 침범해서 충돌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항상 겸허한 자세로 임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어쩌면 롱런하고, 장수하는 비결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