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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Feb 25. 2021

나이가 든다는 것의 즐거움

#오감을 깨우다 #삶의 프레임을 확장하다 #삶의 여정을 떠나다

살아온 경험과 성찰의 시간이 결합에 이전에 무심코 지나친 오감을 깨운다. 새로운 인생의 즐거움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예전의 충동적이고 뜨거웠던 삶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삶의 차원인 인생의 느긋함과 여유를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젊은 시절 경험했던 수많은 삶의 시행착오와 경험의 선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의 퇴적물들은 현재 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것만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가 도래하고, 인간의 수명이 증가하면서 이제 나이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 '라떼는....'이라는 공감력의 부재, 거기다 아집까지 더해지면서 '꼰대'와 '고인물'이라는 노인 비속어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흔히 지금의 오십 대는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 아이들에게 버려지는 첫 세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느덧 오십 대가 세대 간에 '끼인'세대가 된 것이다. 우리 부모님처럼 은퇴 준비를 해야 하는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수명이 증가하면서 퇴직을 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서글픈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수명이 증가해도 물리적 나이는 거스르기가 어렵다는 걸 당사자들은 잘 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이제는 오십대면 한창 일해야 하고, 심지어 70대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보니 나이가 든다는 것이 예전보다 더 힘들고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대접은 대접대로 못 받고, 젊은 세대에게 오히려 꼰대, 고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하대까지 받아야 하니 맘이 편치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계를 보면 오십 대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걸 봐서는 오십 대가 한창이라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나이 드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예전과 비교해 나은 점도 있어 오늘 몇 가지 썰을 풀고자 한다. 



나이가 들고, 퇴직을 하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바로 '아내와의 관계가 더 친밀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직장생활 때문에 주말 부부생활을 해왔고, 바쁜 업무로 인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부족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도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친밀한 관계를 구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첫 사랑 할 때만큼 가슴 뛰는 사랑은 아니지만 세월의 깊이만큼 지금은 다른 누구보다 더 깊고 폭넓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난 아내와 '신뢰(감정) 계좌'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요즘 들어 더 내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도 좋지만 편안하고 의존적인 사랑도 좋은 법이다. 


예전과 달리 폭넓은 시각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사회 초년생 때는 모든 게 첫 경험이다 보니 의욕에 비해 요령이 부족하다 보니 실수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런 삶의 질곡과 역경을 극복한 덕택인지 이제는 삶을 바라보는 폭이 예전보다 훨씬 넓어졌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가까운 것을 볼 때 시야가 어둡지만 먼 곳을 볼 때 시야가 훤하게 잘 보이는 것도 바로 나이듦의 순기능이 아닐까.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좀 더 멀리 보고 살라고 말이다. 


그리고 모가 나지 않고 세상을 둥글게 보는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늘 뾰족하게 남과 비교하면서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예민했던 생각의 각이 다소 무뎌졌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내 속도만큼 달리게 되는 것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통이 다가올 때 감정의 완충 공간이 생겨서 아픔도 덜 느끼게 되었다. 삶의 환경 설정값도 어느 정도 세팅되어서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 


등산할 때 앞만 보고 올랐던 절은 시절과 달리 이제는 등산로 주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주변 시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마주치는 옆집 아기가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아기 키울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예전에는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먹던 음식들도 각각의 영양과 건강을 생각하면서 온 몸으로 느끼고 먹게 된다. 


그리고 수목원에 갈 때마다 계절별로 쏟아오르는 몽우리와 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간과하고 지나버리던 것들을 새롭게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성숙함이란 바로 이런 느낌 아닐까? 


나무는 나이테를 껍질이 아닌 속에 나이테를 새기고, 일 년간의 생로병사 과정을 매년 거치면서 오랜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온전히 잎을 떨구고, 오로지 뿌리에 모든 영양분을 응축하고, 앙상한 몸으로 겨울을 난다. 이렇듯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러한 소소한 관찰을 통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이가 들다 보니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타의든 자의든 젊은 세대들과의 술자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꼰대이자 고인물 세대인 만큼 술자리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바로 셧업(Shut Up)과 페이 업(Pay Up)이다. 말하지 말고 경청하고, 계산을 해야 된다는 뜻이다. 여하튼 젊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그들의 젊은 에너지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나이 듦의 즐거움이다.


또한 직장생활에서 볼 때 나이듦의 순기능 중의 하나는 후배들을 챙길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내가 오랫동안 직장에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지금의 직책에 올랐던 것도 바로 후배들 덕분이다. 후배들을 성장을 위해 이제 나의 남은 소중한 시간을 쏟아부을 때가 된 것이다. 또 그런 자리에 있게 되어서 참 행복하다고 느낀다.  


맥도널드 창립자인 레이 크록이 남긴 전설적인 어록이 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여러분의 업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싸우고, 방어하며, 모든 간섭을 배제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해야 내가 성공하기 때문입니다." 조직관리의 모든 단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게 바로 조직의 선순환 고리인 것이다.




아내는 요즘 돈을 줘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많았던 예년과 비교해서 지금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20살 연애 때로 돌아가자는 말에도 정색을 한다. 아내에겐 지금이 인생 최고의 전성기인 것이다. 나도 진심 공감한다. 혹시 나이 드는 게 두려운 분이 있다면 순기능만을 생각하면 좋겠다. 누가 말했던가? 인생은 무상하고 쓸쓸하니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 가져가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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