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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pr 02. 2021

깨달음의 순간들, Epiphany

본질의 돌연한 현현(顯現),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이번 생은 처음이라' 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삶의 무게 앞에서 갑자기 힘들고 초라해질 때가 있다. 인터넷과 SNS상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와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플렉스(Flex)가 어지럽게 난무하고, 도대체 누가 진짜고 누가 짜가인지 구분도 하기 힘들다. 행복, 성공, 성장, 부, 건강 등 쫓아야 할 삶의 언덕들은 높고 험한데 끝은 보이지도 않고, 문득 멈추고 싶지만 남모를 불안감과 조급함은 삶에 지친 내 목을 더욱 옥죄어 온다. 계속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여전히 나는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뭘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는 중요하지 않고 남들과의 비교 우위적 삶에만 온통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떤 때는 그럭저럭 잘 사는 것 같은데도 뭔가 답답하고 삶이 지겨울 때 나는 문득 현실의 삶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도 당장 떠날 수 없는 현실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너무 힘들어 맨 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해 퇴근 후 술 먹고 잠을 이루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실 술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잠시 정지시킬 뿐이라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버티며 살다가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파랑새는 처마 밑에 있다


이렇게 혼탁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다들 인생의 한 가지 목표를 쫓으며 살아왔다. 그것은 '바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였다. 해답을 찾기 위해 책도 읽고, 강연도 듣고, 연장자와 대화를 해봐도 결국 우리가 찾는 행복은 외부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의 내면에 줄곧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이 충족되면 순간적인 기쁨과 만족만 있을 뿐 어느덧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은 느낄 수 없다. 


동화 속 주인공인 미치르와 치르치르는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찾아온 산천을 헤매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처마 밑에 파랑새가 있다는 얘기처럼 성공과 행복은 우리 주변 가까이에 늘 있다.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충실하게 살면 그 결과로 성공과 행복이 따라온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삶에는 깨달음의 순간이 있다. 다른 말로는 '각성'이라고도 한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와 담쌓고 싸움질만 하던 전교 꼴찌 쓰카모토 료는 어느 날 '이대로 살다 간 큰일 나겠다'는 경각심을 느끼고 집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공부도 시작했다. 급기야는 일본의 사립대를 거쳐 영국 명문대학원에 합격하였고 마침내 수석으로 졸업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철이 없던 사람이 깨달음을 얻거나 각성을 하면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은 이런 깨달음을 일찍 얻었다는 것이다. 큰 깨달음은 '대오각성'이라고 한다. 만약 삶을 살면서 이런 '대오각성'의 순간이 경험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큰 행운이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Epiphany'라는 말이 있다. 최근 세계적인 인기가수 그룹인 방탄소년단의 신곡 제목으로 쓰여서 갑자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piphany'는 그리스어로 '귀한 것이 나타난다'는 뜻이며, 기독교에서는 '신의 존재가 현세에 드러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그의 소설 <스티븐 히어로>에서 Epiphany를 '언어나 몸짓의 비속성 또는 마음 자체의 인상적인 국면에서 나타나는 본질의 돌연한 현현(顯現)'으로 정의하였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 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감각 혹은 통찰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나타나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쉽게 해석하면 '갑작스러운 깨달음''Epiphany'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친구가 돌연 삶의 심오한 철학을 얘기할 때 그 반응으로 "해탈했네, 득도했네" 정도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살아온 경험과 성찰의 시간이 결합해 이전에 무심히 지나친 감각을 깨우는 'Epiphany'의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깨달음의 원천은 항상 책이었다. 책의 한 문장과 문단이 내게 큰 깨달음과 위안을 주기도 했고,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도 바꾸게 했다. 물론 똑같은 책, 영화, 강의를 보더라도 보는 사람이 가진 지식, 경험, 노하우, 관점에 따라 이해와 해석이 달라지고, 깨달음의 폭과 깊이도 달라진다. '염화미소'처럼 석가모니가 법좌에 올라 꽃 한 가지를 듣고서 말없이 대중을 볼 때 그 뜻을 깨닫고 미소로 답한 가섭존자와 같은 제자도 있는 것이다. 미생의 삶의 살아오면서 느꼈던 작은 깨달음이니 '애걔...'하지 말고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본, 분노는 적이다.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낫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워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일본 애도 막부시대의 초대 장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은 맘의 상처가 깊었던 시절 내게 큰 위안과 위로를 주었다. 이에야스가 활동하던 시대! 일본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변화와 격동, 끝없는 갈등과 전쟁이 난무하는 세상이었다. 인간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하고 신의를 지키는 것이 곧 뒤통수와 몰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인간의 삶이라고 보기에는 참기 어려운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목숨은 경각에 달린 시절, 아무 탈 없이 오래 버티어 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는 안정적인 조직 관리의 필수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삶을 반추해 볼 때 내가 현재 겪는 삶의 어려움은 웃음거리이고 한낱 티끌에 불과한 것이다. 존재란 본래 특별한 것은 없는데 인생을 뭔가 굉장한 것으로 생각하고,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만심과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는 법륜스님의 말씀도 내게 울림을 주었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마라. 성공에 초점을 맞추면 맞출수록 그것에서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이나 행복은 의도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그것이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당신의 내면에 소리를 귀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성공이 찾아오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까맣게  잊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성공을 쫓아서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우리들의 삶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욕망은 인간관계처럼 서로 간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한다. '집착'은 무엇인가를 잃을까 두려워 그것에 매달릴 때 생기는 감정이다. 그것이 없으면 안 된다고 믿기 때문에 매달리게 된다. 집착은 사랑인척 하지만 잃을까 두려워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집착을 내려놓기 전에는 무엇이 성공인지? 무엇이 행복인지?를 결코 알 수 없다. 성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연후에야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현재 삶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가 바라던 성공과 행복은 자연스럽게 내 뒤를 따라오게 된다.


시인 에머슨은 '진정 성공한 삶이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존재했으므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했다면 그것이 진정 성공한 삶이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성공이란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만의 유산을 남기고 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세상으로부터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에게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우리의 선택권이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우리의 반응을 선택할 자유와 힘이 있다.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 있다


빅터 프랭클은 또한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인간에게는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삶의 방향을 선택할 자유 의지가 있으며 그것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고유의 권한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행동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숙명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있는 공간은 자극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완충지대'이다. 공간이 클수록 조건 반사적인 반응이 아닌 삶의 질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극과 반응에 선택의 공간이 있는 것을 모른 채 무기력하게 습관화된 패턴의 자극과 반응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빅터 프랭클은 홀로코스트 경험 같은 끔찍한 시련과 고난도 자극과 반응 사이의 '완충지대'에서 올바른 선택을 통해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다. 삶은 자극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자유의지로 선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action)'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inaction)'로 나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라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한 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그토록 오래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 닐 로스 교수의 얘기는 후회 없이 살고자 하는 내 삶의 이정표에 큰 화두를 던졌다. '실행력'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었다. 잠시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한 일에 대한 후회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삶의 변곡점에서 일어난 일부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후회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늘 꼬리표처럼 기억의 한켠에 붙어 있었다. 그때 내가 만약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다면 지금의 내 삶이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인데 등의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Think Big, Start Samll


가장의 꼬리표로 인한 신중함과 조급함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나의 자유 의지와 선택의 공간을 항상 현실에 묶어 놓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포기해야 하거나 각오해야 할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선택의 공간의 힘을 잘 알고 있고, 또한 시작과 지속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크게 하지만, 시작은 작게 하라는 'Think Big, Start Small'의 의미도 잘 인지하고, 실천하고 있다.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한정된 시간 앞에서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 일단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도 당차 졌다.


'시작은 반이다'는 말처럼 일단 시작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매몰비용이 쌓이고, 지속해야 할 이유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발을 슬쩍 담그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진도가 이루어진다. 건강을 원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면 된다. 부를 원하면 부자가 모이는 곳으로 가면 된다. 행복을 원하면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바꾸면 된다. 성장을 원하면 성장한 사람을 멘토로 만들면 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Don't hesitate to start!



단순하게 살라. 간소화하고 또 간소화해라. 더 작은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라.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은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뼛속까지 혁명가인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한 번도 집을 지어본 적이 없었지만 28세에 월든 호숫가에 있는 숲 속에 28달러의 건축비로 5평의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의 '자발적 고립생활'을 하게 된다. 그가 보기엔 사람들은 집의 노예였고, 일의 노예였다. 돈이 없어도 월든 호수에 작은 집을 짓고 농사지어 자급자족을 하면서 여유 있게 살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당시 그의 행적은 일반적으로 부지런히 일해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일반적인 사회통념을 뿌리째 흔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소비 지상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치와 낭비를 줄이고 본질에 충실하고, 비움을 통해 풍요를 찾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목표다. 일반적으로 집은 내가 거주하는 공간보다 물건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훨씬 많다.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들의 저장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부족해서 물건을 사다 모으고, 집에 저장을 한다. 사용하지 않는다면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꼭 사용하는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버리고 비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소유에서 사용과 경험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필요할 때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요즘은 렌털의 경제가 확산되고 있다. 집도, 차도, 가전제품도 모두 렌털로 바뀌고 있다. 소유에 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물건도 사람도 꼭 필요한 부분만 남겨두고 비우고 버려야 한다. 실질적으로 물건이 아닌 사람이 거주하고 사는 공간으로 집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요즘 나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고 있다. 책도, 앨범도, 옷도, 추억의 물건도 계속 버리고 비우고 있다. 그냥 버리려는 아내를 설득해 중고서적과 당근 마켓에 올렸더니 생각지도 않은 큰 금액이 손에 쥐어졌다. 오랜만에 아내와 행복한 데이트를 했다. 은퇴 후 나는 삶과 죽음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미니멀리즘'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계획이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간결함의 원칙'을 말한다.


다양한 세상이 상호작용하는 세상인 '복잡계'에서 우리들은 의도하지 않게 수많은 문제들을 직면하면서 살고 있으며, 빠른 해결이 요구되고 있다. 상황이 복잡하니 가정과 가설도 복잡해지고,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들의 해결방안은 의외로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답일 확률이 높다. '오컴의 면도날의 법칙'은 가정과 가설들은 가장 확률이 높은 것만 염두에 두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나도 이 법칙을 적용해 의외로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하게 해결한 경우가 많았다. 문제가 복잡하거나 해결책이 잘 나오지 않을 때 가장 확률이 높은 것만 골라서 선택을 해보자. 만약 영업조직에서 실적이 나오지 않아 원인 분석을 한다고 가정을 하면 변수가 매우 많다. 수많은 변수를 개선하기 위한 해결방안을 만들지만 실질적인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업직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의외로 부진 원인은 매우 간단한 경우가 많다. 조직의 사기나 동기부여 측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할인점을 '물건을 파는 곳'에서 '고객이 물건을 사는 곳'으로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고 해결하는 힘!이 바로 오컴의 면도날 법칙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있지 못해 생겨난다


블레이즈 파스칼이 던지는 메시지는 휴식에 대한 나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휴식의 본질은 원래 자신이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장소에서 무상무념의 상태로 최대한 편안하게 쉬는 것을 의미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오래간만에 집에서 쉬는 것조차도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비싼 바닷가 휴양지에 가서 고작 하는 것이 나무 그늘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그냥 누워있고, 인근 맛집을 찾아서 식탐을 채우고, 돌아올 때 주는 선물 정도를 고르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해외여행에 드는 시간, 노력, 금전 등의 비용은 적지 않다. 휴무나 휴가 때만 되는 어디론가 나가야 할 것 같은 불안감과 강박증은 여전히 지갑이 얇은 샐러리맨들의 지친 마음에 계속해서 상흔을 남기고 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처럼 여행은 막상 떠나는 것보다는 떠나기 전까지의 기다림의 설렘이 크다. 늘 집에만 있는 것도 문제지만 늘 어리론가 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안감도 정신적 스트레스다. 집에서 조용하기 쉬기 위해서는 휴식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근육이 커지면 신진대사도 활발하고 정신도 맑아진다.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쉬는 연습을 해보자.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여유와 느긋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 트렌드로 '스테이케이션'도 유행을 하고 있다. 집을 휴식의 공간으로 잘 꾸미고 가꾼다면 집은 아주 훌륭한 휴식 공간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2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일주일에 2시간 이상 자연환경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과 행복지수가 높았다고 한다. 멀리 갈 필요는 없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원이나 하천, 둘레길과 같은 곳에서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휴식을 하는 것도 권장한다. 늘 무엇인가 급한 일로 쫓기는 삶 속에서 파스칼의 간단명료한 메시지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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