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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pr 12. 2021

지친 영혼을 달래고, 소통하는 삶

삶의 본질은 미니멀 라이프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추고 달려온 방향을 보면서 잠시 영혼이 뒤쫓아 오는 것을 기다린다고 한다. 바쁘게 달리면서 미처 따라오지 못한 지친 영혼에 대한 기다림의 배려이다. 우리는 바쁘게 삶을 쫓아간다. 하지만 삶은 바쁘게 가는 나의 뒤를 힘겹게 쫓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빨리 달릴수록 삶과 나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그렇게 항상 우리는 빠르게만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바쁘게 살지 않거나 일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고, 왠지 남에게 뒤쳐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은퇴 후 먹고 살만큼의 연금소득이 나오는데도 집에만 있으며 왠지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고, 뭔가 당장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처럼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오랜 기간 직장의 노예로 살다 보니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나이가 지긋한 한분은 자녀도 모두 출가해서 가족을 이루고 있고,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데도 매일 최저임금이 나오는 경비 일자리를 구해서 다니고 계신다. 팔순이 다 되셨는데도 '놀면 뭐하냐?'라며 일을 다니시는데 내가 보기에는 몸이 아파서 병상에 눕기 전까지는 계속 일을 하실 것 같다. 몸이 아파야만 멈추는 삶,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항상 깨있어야 한다


자신의 영혼과 늘 대화하면서 삶의 방향성을 재설정해서 가야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대명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삶의 여정에서 더 이상 비싼 차, 좋은 아파트, 인정과 승진 등은 어쩌면 하찮고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바쁘게 달리던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고 지친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잠시 기다리는 여유도 가져야 한다.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느리지만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 얼마를? 벌어야 현재의 바쁜 삶을 멈출 수가 있는지 나는 늘 자신에게 묻곤 했다. 오랫동안 동일한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현재의 삶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죽음이라는 대명제를 향해 질주하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고,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행복하게 살자(최비최행)


여태껏 최대한 아끼고 모으는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최대한 비우고 버리는데 집중할 예정이다. 그래서 은퇴 후의 삶의 목표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행복하게 살기'로 정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난 오래전부터 공기가 깨끗하고, 풍광이 좋은 좋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조그마한 텃밭에는 먹을 만큼의 채소를 키워 자급자족의 삶의 기반을 만들 예정이다. 여유가 되면 닭도 조금 키워 계란도 얻고, 버섯 재배도 할 예정이다. 도시 아파트 생활비의 절반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아흔이 다 되신 우리 부모님은 현재 도시 근교의 주택에 살고 계신다. 두 분은 현재 100만 원도 안 되는 연금 소득을 받고 계시는데 사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집 근처 텃밭 농사를 통해 봄, 여름, 가을에는 늘 싱싱하고 푸른 제철 채소를 넉넉하게 드시고, 남은 채소는 이웃들과도 나누신다고 한다. 물론 자식들이 용돈을 조금씩 드리긴 하지만 그것조차도 모아서 적금을 드시니 한편으로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부모님의 삶을 본다면 '최비최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돌이켜 보면 사남매가 부모님과 단칸방에서 살 때도 마음만은 행복했던 것 같다.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서 부엌이 있는 단칸방으로, 그리고 우리 집으로 이사했을 때 너무나 행복했다. 전화기와 컬러티브이를 샀을 때는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데도 삶은 퍽퍽하기만 하다. 집은 이미 물건이 점령한 스탁 공간이 되어 버렸다. 더 많이 가질수록 마음은 허해지기만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단순한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소로가 지은 《월든》이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삶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데이비드 소로는 돈이 없어도 자급자족을 하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몸소 증명하기 위해 1847년 28세의 나이에 월든 호숫가에 작은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2년 3개월간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집의 노예였고, 일의 노예였다.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서 시작된 이런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일반적으로 부지런히 일해야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을 뿌리째 흔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도 마지막 순간까지 머리맡에 놓아둔 책이 바로 월《월든》이라고 한다.


비움을 통해 행복의 본질을 찾는 것이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행복을 발견하지 못해서 불행한 것은 아닐까? 행복은 일상의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말이다. 


이른 새벽 손을 잡고 산책하는 노부부의 손끝 위에,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시원하게 마시는 차가운 맥주의 거품 속에, 이른 저녁 맛있게 우유를 먹고 곤히 잠든 어린아이의 코 끝에, 비 오는 날 분주하게 파전을 굽는 아내의 부침개 접시 위에, 햇볕이 따뜻한 휴무 날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읽는 재미난 책갈피 사이에, 지친 일상을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부부와의 따뜻한 대화 중에 행복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어린 왕자는 '완벽함이라는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라고 책에서 말했다. 'Less is more'라는 말처럼 단순함과 간소함은 어떻게 보면 바로 우리가 찾는 삶의 본질이 아닐까? 단순함은 통제 가능한 삶으로 연결되고, 이러한 삶은 다시 느리고 여유로운 삶으로 이어진다. 느리지만 여유로운 삶에서 행복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니멀리즘은 소유보다는 사용과 경험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런 태도는 사람들을 가진 것으로 평가하지 않고 본질로 대하도록 해준다.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걱정에서 벗어나 현재의 행복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모든 것은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하며, 더 나아가 불필요한 시간을 버리고, 불필요한 관계를 버리고, 불필요한 생각마저 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느리지만 여유로운 삶의 속도에 맞추어 자신에게 맞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만들어보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은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제발 간소하게 살라는 그의 외침이 머리가 복잡한 오늘 아침, 간소하고 단순한 삶을 살고 싶은 내 간절한 외침이 감정의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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