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Apr 15. 2021

그만 좀 정리하면 안 되겠니?

정리벽과 강박증을 무뎌지게 만드는 방법

편집증이나 강박증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거나 어질러져 있는 상태를 참지 못하며, 누군가 내가 정리한 물건을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면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옷장이나 책상 서랍함 안의 물건들이 삐죽 튀어나오면 습관처럼 달려가서 정리를 해야 한다. 바닥에 떨어진 한올의 머리카락을 보거나 소파나 냉장고 하단의 쌓인 먼지가 갑자기 눈에 띄기라도 하면 찝찝해서라도 바로 치워야 한다. 냉장고 안의 맥주, 소주, 음료, 반찬통들은 할인점의 진열대 수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오와 열을 맞춰서 정리정돈을 한다. 


이런 성격은 주방에서도 빛을 발한다. 식사를 하면 바로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마시면 잔을 바로 씻어서 싱크대 선반에 올려놓는다. 쓰는 주방용품과 그릇은 용도별, 크기별로 정리가 되어있어야 한다. 치약은 하단에서부터 짜야하고, 세면대나 싱크대 수전 꼭지 상단에 얼룩이라도 묻으면 손으로라도 씻어서 얼룩을 바로 제거해야 한다. 


책이나 노트의 페이지가 접혀 있거나 말린 상태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원상태로 펴야 한다. 심지어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흰색 도색 라인만 밟는 이상한 행동 패턴도 있다. 집을 나간 후에는 창문이 닫혔는지, 불은 껐는지, 가스레인지 밸브는 잠그었는지 현관문은 잠그었는지 다시 확인하고, 차량에서 내린 후 한참을 걸어가다 차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리모컨을 눌러 확인하는 행동도 자주 반복하곤 한다. 




정리벽으로 따지자면 아내는 나는 완전 정반대다. 집 청소도 내가 휴무날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한다는 자녀들의 충격적인 증언도 있다. 당연히 새시 문틈 사이의 먼지와 찌든 때와 환기창 유리 청소는 당연히 내 차지다. 혼자서 열심히 닦는 것을 보는 아내는 내게 '고마워~'라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지만 나는 내심 속상하고, 분하고, 밉기까지 한다.


바닥에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쌓여 있어도 아내는 둔감하게 지나치곤 한다. 그래서 그 뒷정리는 항상 내 몫이다. 그냥 하면 되는데 잔소리까지 하니 아내는 무시하기 일쑤다. 이렇듯 정리, 청소, 깔끔함에 대한 집착, 오와 열, 각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은 항상 나를 힘들게 한다. 



나의 이런 편집증적인 정리벽은 어릴 때부터 생긴 것 같다. 이런 성향을 일찍부터 간파한 누나들은 장난기가 발동해 내가 밖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일부러 집안의 모든 옷장이 서랍을 조금씩 꺼내서 옷을 끼워 넣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곤 했다.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나는 집에 오자마자 서랍을 모두 열어서 순서대로 옷들을 정리해서 다시 서랍을 닫는 행동을 습관적으로 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매번 당하는 나의 모습이 짜증도 나고, 분하기도 했던 안 좋은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요즘은 나처럼 우리 주변에는 청소와 정리정돈, 생활 속 작은 습관들까지 틀에 맞춘 듯 정확하게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흔히 '강박증'이라고 불리는 이 증세는 본인이 원치 않는데 마음속에 어떤 생각, 장면, 충동들이 반복되어 불안감을 느끼고, 그 불안감을 제거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강박증은 흔히 반복적으로 씻는 행위, 대칭이나 각을 맞춰 정렬해야 안정을 찾는 행위,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쌓아두는 행위, 뾰족한 물건에 심한 불안을 느끼는 감정, 동일한 상황에서 반복적인 행동을 되풀이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강박증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자질구레한 걱정을 되풀이하거나 자신은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반복해서 떠오르는 강박 사고를 겪으며 이 사고 과정을 강박행동으로 표출하고 되풀이하는 악순환을 형성한다. 정리벽은 물건이나 정보를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과 살다 보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심지어는 '성격차'라는 말로 이혼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강박증을 겪는 분들은 스스로는 강박증이 있다는 것을 평소에는 지각하지 못하고, 단순히 성격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치료가 긴급하지는 않지만 계속 놔두면 스트레스가 상당하고 심지어 심신이 피폐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전, 생물학적, 정신사회적인 원인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강박증 증상이 악화되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증상이 완화된다'는 임상 연구가 최근 국가 건강정보 포털 의학정보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편집증적인 정리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인지행동 치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치료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어떻게 하면 이런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을까? 관련 자료를 찾아봤지만 제대로 해결방안을 제시한 곳이 드물었다. 그래서 나는 경험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방안들을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제안하고자 한다. 전문가적인 식견은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기 바란다.


첫 번째, 강박증은 하나의 '집착'에 가깝다. 집착을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운명애(Amor Fati)'를 주창한 독일 철학자 니체는 평생 동안 두통, 구토, 눈 통증을 앓았다. 질병들로 인해 집중적인 글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잠깐씩 상태가 호전되는 틈을 타서 사유와 글쓰기를 했고 그 결과 그의 잠언집이 나왔다.


'나를 죽게 하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한 니체는 삶에서 질병이나 고통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하고 단지 감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사랑함으로써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한다. 이처럼 강박증도 극복하기보다는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자신의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 강박증을 벗어나려고 하기보다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장점으로 여기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다 보면 강박증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약해질 것이다.




두 번째, 강박증을 심해질 때는 몸을 움직여서 관점이나 관심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된다.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밖으로 나가서 가볍게 산책을 하는 것이다. 아니면 설거지나 가볍게 청소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밖에 나갈 형편이 안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몰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것도 어려우면 약속을 잡아서 무작정 나가보자. 제일 좋은 방법은 야외로 나가서 자연을 느끼는 것이다. 일주일에 2시간 이상을 자연에서 보내면 행복감과 만족감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세 번째, 스트레스가 줄면 강박증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예민해지고 짜증이 난다면 그것은 자신의 '뇌'에게 '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안 멈추면 일이 커진다. 그때는 일단 멈추고 쉬어야 한다.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낮잠을 자고 싶다면 그냥 자면 된다. 


네 번째, 명상을 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와 관점 전환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생각이 너무 많거나 복잡하면 행동의 힘이 약해져서 삶의 에너지도 약해진다. 명상은 뇌파를 안정시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를 만들고, 에너지 소비량을 절감시켜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키고, 심신의 피로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몇 분씩이라도 명상을 자기 나름대로 실천해 나가면 마음의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섯 번째, <청결의 역습>이라는 책을 보면 '인간의 청결과 살균에 대한 강박증은 인간의 면역력을 더 저하시켰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너무 청결하고 위생을 강조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어릴 때 우리 세대는 위생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살았는데도 지금처럼 아토피와 같은 피부병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조금 지저분한 게 면역력을 키워준다고 하니 정리벽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여섯 번째, 반복적인 노출로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다. 공포영화도 처음 보면 무서움이 극에 달하지만 계속 반복해서 보면 공포가 약해진다.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도 자주 직면하고,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강박증에 대해 무뎌지는 감정의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그냥 무시하고,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하도록 노력해 보자.


일곱 번째, 죽음이라는 대명제를 향해 달리는 인생 여정의 관점에서 볼 때, 강박증과 같은 하찮은 증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정된 인생에서 해야 하거나, 처리해야 할 인생을 중요한 일들이 매우 많다. 이런 사소한(?) 증세 때문에 내 삶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죽음을 전제로 삶의 모든 여정 관리를 하는 사람에게 강박증은 더 이상 중요한 순위가 아님을 명심하자.




사실 주관적인 생각을 적다 보니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께는 제대로 된 해결방법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생각의 전환과 마인드셋 장착이 편집증적인 정리벽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성향이 완전 다른 아내와도 어느 정도 성격차(?)를 극복하고 잉꼬부부 행세를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의 뜻을 매우 좋아한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모두 내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작가의 이전글 커넥팅 더 닷 스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