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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pr 16. 2021

삶을 원하면 죽음을 준비해라

웰빙, 웰에이징, 웰다잉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If you want to ensure life, prepare yourself for death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삶은 언제나 죽음의 경계선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처럼 삶은 언제나 죽음이라는 대명제를 통해서 성찰과 깨달음을 얻는다.


영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의사는 자살시도를 한 후 병원에 입원한 베로니카에게 가짜 시한부 선고를 내리고 베로니카의 삶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죽음을 앞둔 베로니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일상이었고, 건강이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매일 주어지는 삶을 기적으로 여기고 살 것'이라고 의사는 이 영화에서는 말하고 있다. 기적이란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죽음을 지각함으로써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는 모든 것이 겸손해지고, 숙연해진다. 그래서 항상 끝을 생각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삶의 과정도 여정도 더 충실해진다. '웰다잉(well-dying)'을 위해서 '웰빙(well-being)'과 '웰에이징(well-aging)'의 삶이 더 소중해진다는 말이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65세 인구가 81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는 말이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연령대가 많아지면서 당연히 죽음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의술의 발달로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려는 목소리는 높아졌다.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존엄사'와 편안한 죽음을 맞고 싶은 '안락사'가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자기 결정 권리가 아닐까?


'안락사'는 영어로 'euthanaia'라고 한다. 그리스어로 '좋다'라는 뜻의 'eu'와 '죽음'을 뜻하는 'thanatos'로 만든 조어로 '편안한 죽음'을 의미한다.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한마디로 연명의료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소극적 안락사' 또는 '존엄사'라고 하며, 인위적 생명 단축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적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의사 조력자살'이라고도 불린다.


존엄사는 환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고 임종을 맞이할 자기 결정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존엄은 무엇일까? 육체적으로 고통이 없고, 가족들에게 맑은 정신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고, 살 가망도 없는 나를 위해 비싼 병원비와 돌봄의 신체적 고통을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전에 '연명의료 의향서'라는 문서를 작성하면 된다. 이렇듯 존엄사와 안락사는 이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호주의 간병인 부로니 웨어가 지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에 보면 '죽기 전에 후회하는 다섯 가지'가 나온다.


(1)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

(2)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3)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4) 친구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5)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라는 후회는 직장생활을 하는 내게 큰 질문을 던졌다. 물론 제대로 직장생활을 하려면 내 삶의 많은 것들을 갈아 넣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갈아 넣다가는 조만간 번아웃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참는 게 능사만은 아닐 것이다. 선택과 집중, 우선순위를 통해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최적화시킴으로써 워라벨을 추구해야 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다섯 가지 후회를 근거로 볼 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바로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웰빙'이고 '웰에이징'이고 '웰다잉'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삶의 기준을 죽음이라는 척도로 잴 때 비로소 삶의 여정은 충실해질 수 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평소에 깨달으며 살아야 한다.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시간이 주어져 삶을 정돈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인간에게는 얼마나 축복인지를 느껴면서 살아야 한다. 매일같이 눈만 뜨면 주어지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전일 죽은 사람이 그토록 갈구하던 내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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