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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pr 28. 2021

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께 띄우는 마음의 편지

#부모님 전상서 #이메일 #부모님 건강하세요 #부자지간 #항상 고맙습니다

아버지,
잔인한 4월이 드디어 끝나가고, 계절의 여왕인 5월이 곧 옵니다.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Eliot)의 ‘황무지’란 시를 보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1922년에 발표된 이 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서구인들의 내면 풍경을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명분 없는 전쟁의 참화를 겪은 사람들은 가치관을 상실한 채 적극적인 삶의 의욕마저 포기하고 취생몽사(醉生夢死)의 나날을 이어갔습니다. 마치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무지와 같은 삶입니다. 이렇듯 취생몽사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4월에 봄비가 내려 새 생명을 틔우는 것은 역설적으로 분명 잔인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잠든 영혼들을 각성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난겨울이 따뜻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대지를 덮은 눈이 모든 걸 잊게 해 주고, 땅속 마른 덩이줄기가 영양분을 공급해주어 최소한의 생명은 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 이 말은 시인 노천명의 <푸른 오월>이란 시의 한 구절에서 나온 말입니다.


청자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에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진 길을 걸으면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창머루 순이 뻗어나가던 길섶
어디선가 하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젖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아니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이 모양 내 맘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오월은 산과 들이 모두 신록으로 물들고, 라일락과 아카시아 향이 가득한 계절입니다. 또한 오월은 일 년 중 가장 맑고 온화한 날씨가 많은 달이고, 푸르름의 절정을 이루는 달이기도 합니다. 온몸에 웅크렸던 오감의 세포를 깨우는 오월은 굳이 사람의 인생으로 보면 피부가 탱글탱글하고, 얼굴이 확 펴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아 더욱 부럽고, 함께 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말하는데 아마 계절로 보면 봄이고, 월로 보면 5월일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처럼 나이가 들면서 매년 끊임없이 다가오는 계절 중에서도 유독 봄이 기다려집니다. 인생에도 전생기가 있는데 계절에도 전성기가 있다면 아마 오월이겠지요. 특히 봄의 전령사인 벚꽃, 개나리를 비롯해 튤립, 수선화, 수국, 팬지, 비올라, 데이지 등 형형색색의 봄꽃을 만나볼 수 있으니 더욱 기다려집니다. 아흔이 다 되신 아버지가 맞는 봄과 오월은 특히 더 많은 의미와 감회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이렇게 좋아하면서도 일에 쫓겨서 제대로 오월의 봄의 향연을 제대로 만끽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오월이 끝나는 시점만 되면 그런 아쉬움에 한숨을 쉬고는 합니다. 봄 날씨가 많이 완연해졌는데도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조석개변하는 것 같습니다. 몸도 많이 불편하시겠지만 어머니와 함께 잠시나마 동네 한 바퀴라도 산책하시면서 봄을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는 근 텃밭농사를 짓지 못하시게 되어서 많이 힘들어하시겠지만 오히려 지금이라도 남은 여생 동안 좀 더 쉬시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삼시세끼가 보약이니 제철음식 꼭 잘 챙겨 드시고, 항상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어머니께는 안부 꼭 전해주십시오. 금주 토요일 시간 내서 아내와 함께 집에 들르겠습니다.


서울 본사에서 막내아들 배상




아버지는 올해 아흔이 되셨다. 갑종 장교 출신인 데다 625 참전용사 출신이기도 하시다. 지금은 귀도 거의 안 들리시고, 거동도 어려우신데도 불구하고 십 년 이상 내게 매일 이메일을 보내신다. 메일의 내용은 정치, 세계 뉴스, 건강과 의학상식, 여행과 음식, 역사 및 희귀 사진, 세계 신기록 및 진풍경, 부모 봉양 등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관되게 같은 주제로만 이메일을 보내신다. 호는 '청송암(靑松岩)'인데 '바위 위에 홀로 서있는 푸른 소나무'란 뜻인 것 같다. 


625라는 한국전쟁을 몸소 체험하셨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전쟁에 대한 공포를 간직한 세대이며,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에서 출발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을 직접 목격하신 세대이다. 그래서인지 안보문제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하신다. 


이메일 내용이 딱히 상기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오다 보니 한동안은 제목만 보고 내용은 스킵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께서도 노쇠하셔서 거동도 불편한 상황에서 보내시는 이메일을 보면서 더 이상 예전처럼 이메일을 스킵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 받는 이메일이 아마도 아버지와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멀리 떠나 서울이라는 낯선 본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매일같이 받은 아버지의 이메일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한 번도 제대로 답장을 드린 적이 없는 것에 대해서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 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께서 보내는 이메일에 답장 형식으로 안부를 작성해서 회신을 드리기 시작했다. 막내인 나는 아버지와 나이 차이도 꽤 나고,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와 제대로 진지하게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떤 내용을 이메일로 적어야 할지 상당히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24절기에 관한 내용, 계절의 변화, 아버지가 보내신 메일에 대한 간단한 소감, 나의 서울 근무 소식, 어머니와 가끔 하는 전화 통화 내용, 손자 및 손녀 얘기들을 조금씩 업데이트하면서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는 대학생 자녀들을 둔 아버지가 되다 보니 가장이라는 무게를 오랫동안 짊어지신 아버지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더 깊어졌고, 삶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한몫한 것 같았다.




처음 이메일을 보내고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날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께 이메일 답장을 보내신 것에 대해서 한참 동안 입이 마르게 내 얘기와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내가 보낸 이메일을 매우 기뻐하시면서 몇 번씩 반복해서 읽으시고, 어머니께도 오라고 해서 읽도록 종용하신다고 했다.


"야야, 아버지께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구나. 나도 읽으면서 네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매우 적다 보니 부자지간에 제대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또한 어릴 때부터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 품에서 자라다 보니 부모의 정과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 당시 세태가 '남존여비'와 '가부장적 권위'가 매우 강했던 시절이라 아버지는 돈만 벌어주면 제 역할을 다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덧 나도 예전 어릴 때 보았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란 이름표를 달고 살지만 정작 누구 하나 위로해주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자리임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는 한 때 태산 같고, 흔들림 없는 거목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이 들고 병든 아버지는 바람 부는 들판에서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와 같은 존재처럼 위태로워 보이기 시작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아버지와의 소통을 시작한 지가 일 년 남짓 되었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먼 타지에서 보내는 막내아들의 안부 메일은 말이 드문 했던 부자지간의 소통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메일은 들리지 않은 아버지의 귀를 대신하는 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쁘고 여유 없지만 일주일에 꼭 한 번씩은 이메일로 답장을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메일이 오지 않은 경우에는 혹시 아버지 건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퇴근하면서 전화를 드리곤 한다. 메일이 온다는 것은 다른 말로 아버지가 건강하시다는 '행복의 시그널'인 것이다. 


이번 주는 대구로 내려가서 아내와 함께 부모님 댁을 방문할 예정이다.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회도 사서 갈 예정이다. 자식에게 가장 큰 행복 중의 하나는 부모님들의 강령과 무탈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집에 전화를 걸 때면 엄마는 항상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자식이 부모에게 전화를 드리는 것도 고마워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나 하니 갑자기 쓸쓸해진다. 


예전엔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씀하시던 엄마가 요즘은 그런 말씀을 거의 안 하시는 걸 보면 아마 좀 더 오래 살고 싶으신 것 같다. 엄마, 아버지 살기 좋은 시대가 도래했는데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예전에 고생했던 시간들 조금이라도 보상 더 받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막내아들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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