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의점 브랜드 한 곳이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광고를 삭제하고, 사과문까지 올렸지만 불매운동은 사그라들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군부대 PX계약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과하다는 일부 여론도 있지만 최근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젠더갈등'에 유통가는 긴장감이 폭발하고 있다. 기업이 진행하는 이벤트의 빈도가 워낙 많다 보니 임원급 관리자들이 이벤트 광고의 이미지, 문구 등을 일일이 감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당사 기업의 오너와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렌드 코리아 2018>을 보면 이런 MZ세대들의 트렌드를 '미닝 아웃(Meaning Out)'이라고 표현했다. 의미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 속을 나오다는 뜻의 '커밍 아웃(Coming Out)'이 결합된 신조어다. 2018 소비 트렌드로 선정되기도 했던 '미닝 아웃'은 개인의 취향과 가치, 사회적 신념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선언하고 표현하는 행위를 뜻한다. 사실 미닝 아웃은 악한 기업에게는 불매운동(boycott)을, 착한 기업에게는 구매운동(buycott)을 하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더 업그레이든 된 소비자 운동이다. SNS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닝 아웃은 그 범위와 대상이 확대되고 있으며, 마치 MZ세대들의 놀이문화처럼 집단행동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엔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면 요즘 MZ세대들은 SNS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신념, 생각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해시태그(#)를 달기도 하고, 관심을 가지는 분야 또한 정치, 사회, 경제, 환경, 동물 인권, 젠더 이슈 등 제한된 영역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미닝 아웃은 소비에도 나타나는데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있는 기업의 상품에 대해서는 '불매운동(Boycott)', 착한 기업에는 '구매운동(Buycott)'을 펼친다. 이들은 동물 인권, 성평등에도 큰 관심을 가지는데 동물 도축을 반대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비건'이 되기도 하고, 동물 실험을 하는 화장품 브랜드를 거부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소비하는 제품과 기업의 이미지를 자신에 투영하고 자신과 동일화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나 가치를 높이고, 착한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얼마 전 '돈쭐'이라는 용어가 한동안 유행을 했다. '돈'과 혼쭐'이 결합된 합성어로 사회적으로 옳은 일을 했을 때 돈으로 혼을 내야 한다는 좋은 의미로 좋은 평가를 받은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보이콧'의 반대 개념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 점주가 형편이 어려운 형제에게 공짜 치킨을 대접해 온 사실이 알려주면서 '돈쭐'을 내주겠다는 고객 주문이 폭증하기도 했다. 또한 한 때는 '돈쭐'과 같은 미닝 아웃 소비도 좋지만 당시 선행으로 주문이 폭주했던 치킨집 점주는 오히려 주문 폭증으로 영업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런 미닝 아웃은 바로 정치적 선명성으로도 나타나는데 광우병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미닝 아웃이 확대되는 이유는 바로 시민들의 정치참여 역량은 날로 강화되는데 비해 정부가 이를 제도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정치 불신이 쌓이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미닝 아웃과 관련해 유통가를 뜨겁게 달구는 핫 키워드는 바로 '가치소비'다. 경기 불황 속 가격과 성능을 중요시하는 '가성비' 소비가 얼마 전 유행을 했다. 하지만 곧이어 가격 대비 품질보다는 소비자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가심비(價心費)'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서 소비를 하는 '가치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가치소비는 '소비자가 광고나 브랜드 이미지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가치를 토대로 제품을 구매하는 합리적인 소비 방식을 말한다. 소비자는 본인이 가치를 부여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소비하되 그렇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저렴하고 실속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예전에는 이런 소비 트렌드는 특정 소수에게만 있었다면 지금은 전체 소비의 트렌드로 정착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가치소비의 중심에는 시장의 소비 핵심계층으로 부상한 MZ세대(1900년대 초부터 200년대 초까지 태어난 세대)의 영향이 매우 크다. 저출산 시대 부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비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지고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을 능숙하게 다루다 보니 '스마트 컨슈머(smart consumer)'라고 불리기도 한다. MZ세대는 전 세계 인구의 50%, 2020년 통계청 발표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수의 44%를 차지하는 주력 소비계층으로 '정의', '공정성',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세대이다.
이들은 남들의 소비를 따라 하기보다는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미세먼지 등 일상 속 환경문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치, 경제, 환경 등 다양한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소비라는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근 ESG에 근거한 소비를 선도하면서 기업의 전반적인 경영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SG 경영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의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의 투명성 등을 감안한 지속가능 경영 방식을 말한다.
가치소비란 내가 공감을 하면 소비를 하지만, 공감하지 않으면 소비를 하지 않는다. MZ세대는 기존 세대와 달리 자신들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Fairness and Goodness'라는 용어처럼 내가 소비하는 제품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좋게 사용하기를 원하는 자발적 마인드에서 확산되고 있다. MZ세대는 남의 시선보다는 나의 행복, 즉 소확행이 중요한 세대이고, 욜로(YOLO)의 중심에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마음 가는 것에 소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 공정, 공평을 중시하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반려동물과 가장 가까운 세대이기도 하다. 가치소비는 또한 중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N차 신상'이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당근 마켓이라는 플랫폼 기업의 초고속 성장을 이끌기도 했다.
가성비보다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 ESG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이 촉망받는 시대
이러한 MZ세대들의 가치소비는 한발 더 나아가 기업들의 경영방식까지 바꾸어 나가고 있다.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이 소비의 큰 손으로 부상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고집하던 명품 브랜드들이 잇달아 온라인 매장을 열고 있다.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를 단순하게 구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책임 있는 기업의 이미지까지 고려해서 가치소비를 한다. 최근 대기업 중심으로 브랜드들이 이런 소비층을 확보하기 위해 본격적인 ESG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친환경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포장지에 라벨을 없앤 '무라벨 생수'의 출시, 이케아에서 사용하던 이케아 중고가구를 매입해 이를 되파는 '바이백(buy-back)' 캠페인의 등장, 마켓 컬리에서 모든 포장을 종이로 바꾼 '마켓 컬리 All Paper Challenge' 캠페인, 한 대형마트에서 도입하고 있는 친환경 세제 리필 샵 등이 가치소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소비에 대응하기 위해 유통업체들은 얇아진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무엇보다도 가치소비의 '목적'과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외식 제한에 따라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맛있게' 먹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가성비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가심비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최근 신선식품의 핫 키워드는 바로 '고당도', '왕사이즈', '프리미엄'이다. 같은 과일이라도 당도가 더 높고, 크기도 크고, 품질도 좋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수산의 경우 크랩은 사이즈가 클수록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축산의 경우 웰빙, 품종, 특수부위 등이 다양할수록 고객의 반응이 커진다.
코로나로 인해 생기는 우울감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를 넘어 장기화로 우울이나 불안 등의 감정이 분노로 폭발하는 '코로나 레드(Corona Red)'로 확산되면서 소비 또한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와 모임 및 해외여행 제한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잉여 저축'이 쌓이면서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을 해소하고 싶다는 보상심리의 일환으로 '보복 소리'가 최근 확산되고 있다. 소비는 단순히 물질의 결핍보다는 정서적 결품을 보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마음속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과도 같다. 팬데믹 등 외부요인으로 인해 억눌린 소비로는 대표적으로 여행 비용, 외출을 위한 옷, 화장품 구매 비용 등이 있는데 이런 돈은 별도로 소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일종의 '초과 저축'이 발생하는데 중소기업 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지난 전염병이었던 사스와 메르스의 경우에도 '보복 소비'가 발생했다고 한다.
'펜트 업 효과(Pent-up Effect)'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우리 말로는 '수요 분출 효과'라고 해석되는데 이는 억눌렸던 수요가 급속도로 살아나는 현상으로 보통 외부 영향으로 수요가 억제되었다가 그 요인이 해소되면서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보복 소비는 이 펜트 업 효과에 '소비'라는 개념을 더한 것으로 보면 된다.
최근 명품 패션, 명품 차량, 명품 가전 등에 대한 MZ세대들의 명품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명품 소비에는 가격이 높거나 고급일수록 특별한 것으로 인식해 수요가 증가하는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나 특정 상품을 구입하면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집단이나 계층과 동류가 된다는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20년 명품 매출에서 20대가 10.8%, 30대가 37.4%로 2030 세대가 49.2%로 절반을 차지했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MZ세대의 보복 소비가 명품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팬데믹 확산에 따른 해외여행 제한 등의 불만이 명품 소비 및 플렉스 소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MZ세대는 사회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사회적 상황을 고려할 때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명품 소비에 집중하는 것은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해 암울함을 극복하려는 욜로(YOLO)의 다른 한 측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MZ 세대는 기존 세대에 불고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 열품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에 값비싼 명품을 구매하고 있다고도 분석하고 있다. 명품에 대한 소비가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구매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또한 MZ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플렉스(flex, 과시) 문화도 보복 소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렇듯 보복 소비는 비싼 명품이라는 관점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MZ세대는 각자의 취향과 각자의 가치가 다양하기 때문에 보복 소비의 대상이 되는 항목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신혼부부들이 유럽여행 대신에 비싼 안마의자나 고가의 가전을 구매하는 것이나 반려동물을 위한 건강 케어 가전, 자신의 취향을 위한 고가의 게임기나 타이틀 구매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식기 세척기, 의류 건조기, 로봇청소기는 최근 대표적으로 판매가 급증하는 케어 가전으로 가사 일을 도와주는 이모님이라는 뜻으로 '3대 이모',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는 신이 내린 가전으로 '삼신(三神) 가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제니퍼 러너 교수는 이코노믹 조선과 인터뷰에서 '팬데믹이 사람들에게 우울한 감정을 일으켰고, 소비자들은 이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과소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08년 미 카테기맬런대학교의 신시아 크라이더 교수 연구팀 등과 함께 연구한 '우울한 사람은 구두쇠가 아니다(misery is not miserly)'라는 이론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당시 연구팀은 18세에서 30세까지 33명을 대상으로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슬픈 영화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자연 다큐를 보여준 뒤 물병을 구매하게 했는데 슬픈 영화를 본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30% 이상 더 많은 돈을 지불해서 물건을 샀다고 한다. 즉, 우울증을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게 되고, 비싼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최근 부상하고 있는 '미닝 아웃', '가치소비', '보복 소비'는 소비에 대한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트렌드이다. 이제 소비는 MZ세대들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기업들이 이러한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기업의 경영과, 유통 및 판매 전략에 잘 적용한다면 향후 더욱 차별화된 기업의 브랜딩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