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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y 13. 2021

끼리끼리 문화가 사라진다

케빈 베이컨 게임과 나홀로족의 등장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식량과 생존경쟁에서 다른 호모 계열보다 체력적인 열세가 뚜렷한데도 불구하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대규모 협업을 통해 주변의 모든 종들을 모두 멸렬시키고, 현재까지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대규모 협력이 가능해진 것은 바로 인지 혁명(Cognitive Revolution)때문이다. 인지 혁명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을 믿는 능력'이라고 일컫는다. 즉 뒷담화, 거짓말로 허구를 만들어 무리의 수를 늘리고, 질서를 세워 결집력을 다졌던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을 인지하는 이런 특성으로 인해 사피엔스들은 더 쉽고, 더 강력하게 뭉쳤고, 협업을 하면서부터 부족과 왕국, 제국과 같은 거대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 종교 등 실제로 존재하지 상상의 것들허구를 믿게 하기 위해서는 언어 능력이 형성되어야 하고, 정보 전달 능력을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에 사피엔스라는 종은 낯선 동종 간에도 공감과 협력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피엔스라는 종의 특성 때문인지 현재까지도 사람들 간에는 '끼리끼리 문화'라는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 비슷한 용어로는 '유유상종', '파벌', '패거리 문화' 등이 있다. 물론 이런 끼리끼리 문화에 대한 평가는 시대별로 명암이 엇갈린다. 팬데믹 확산 이후 비대면 문화가 보편화되고, 디지털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끼리끼리 문화도 이제 새로운 형태의 사회관계망 문화초개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끼리끼리 문화는 여전히 인맥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끼리끼리 문화는 대놓고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관습적으로 길들여진 무의식적인 생활패턴과 의식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경우가 더 많다. 동창회 같은 모임을 가도 생활수준과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별도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하며,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할 때도 기숙사 거주 여부에 따라 기숙사생들 간에 사적인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이해관계 또는 동질감을 공유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 때문이다.



한 때 노스페이스를 입지 않으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수를 따르는 무언의 압박인 '동조 현상'은 우리 사회에 자주 나타나는 일면이기도 하다. 집단 소속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맹목적으로 유행과 열풍에 올라타야만 한다. 이런 끼리끼리 문화의 특성 중의 하나는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매우 배타적이고, 폐쇄성이 짙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흔히 '아싸'라고 하는 사회적 문제들이 대두되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한국인은 어떻게든 끼리끼리 문화에 편승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 대화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 공통점부터 찾는다. 가장 먼저 성씨를 묻고,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고향, 출신학교를 묻는다. 남자의 경우 군대를 어디를 나왔는지에 대해 또 묻는다. 어떻게든 연결 끈을 찾으려고 애쓴다. 만약 한 가지라도 공통점이 발견되면 심리적 거리감이 없어지면서 관계가 급속도록 진전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혈연, 지연, 학연을 따져서 몇 다리만 건너면 모두 다 연결되는 '네트워크 사회'이다.



'베이킨 넘버' 또는 '케빈 베이컨 6단계 법칙'이라는 용어가 있다. 인간관계에서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친구라는 말이다. 케빈 베이컨은 미국에서 태어난 1958년생 배우로서 <13일의 금요일>, <아폴로 13>, <할로우 맨> 등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배테랑 배우이다. 그의 이름을 딴 케빈 베이컨 게임은 1994년 1월 크레이크 패스 외 2명의 청년이 MTV <존 스튜어트 쇼>에 케빈 베이컨의 다양한 작품 활동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증명하겠다고 한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유명한 여배우 카메론 디아즈는 케빈 베이컨과 한 번도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와일드 씽>이라는 영화에 빌 머레이와 출연했고, 빌 머레이는 <미녀 삼총사>에 카메론 디아즈와 출연을 했기 때문에 2단계 만에 서로 연결이 되었다. 또한 줄리아 로버츠와는 3단계 만에 연결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몇 단계만 거치면 케빈 베이컨은 할리우드의 모든 배우들과 연결이 된다는 것이 바로 크레이크 패스 외 2명의 청년이 증명한 내용이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된 사람의 수를 '베이컨 넘버'로 지칭했고, 케빈 베이컨과 일면식이 없는 배우를 최단 단계로 찾는 게임이 바로 '케빈 베이컨 게임'이다. 게임 결과 할리우드 배우들 대부분이 베이컨 넘버 6을 넘지 않았으며, 평균적으로 3~4단계에서 대부분 연결되었다고 한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친구'라는 서양의 속담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한국은 단일민족의 특성상 외국보다 더 끼리끼리 문화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한 마을에 사는 친한 주부모임에서 한 명이 어떤 것을 사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구매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모임도, 구매도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트렌드가 유행하면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유행이 전파된다. 이러한 끼리끼리 문화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노래방, 실내 스크린 골프, 고스톱, 룸살롱은 한국에만 있다고 한다. 이렇게 3~4명 단위의 끼리끼리 문화가 만약 안 좋은 형태로 나타나면 패거리 문화가 된다. 만약 한국인 대부분이 외국의 칵테일파티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 문화를 접하면 매우 낯설어하거나 어색해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는 나와 가까운 친구 5명에 의해 평가된다고 말한다. 유유상종의 의미처럼 내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내 평가의 잣대가 된다는 말이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내보내는 신호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끌어당겨서 끼리끼리 모인다고 한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그 생각과 행동을 공유하고, 그것들이 무리의 특징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무리의 특성은 그 소속된 사람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예전 지방 점포에 근무할 때 의도치 않게 나와 어울리는 친한 직원들 네 명 중에 무려 세명이 '돌싱'들이었다. 그 네 명 중 한 명만 결혼 중(?)이었고, 세명과 만나서 어울리면 어색할 것도 같은데도 불구하고 코드가 맞는지 업무가 끝나면 자주 함께 술자리를 하곤 했다. 평소 나는 네 명의 직원이 모인 공개적인 술자리에서도 자주 非돌싱 직원에게 가급적이면 안 좋은 기운이 미칠 수도 있으니 무리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조언을 들은 그 직원은 모임의 분위기가 워낙 좋다 보니 내 충고를 진지하게 귀담아듣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내가 다른 지역으로 전배를 간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그 직원도 돌싱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매우 아팠던 적이 있다. 이렇듯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나도 모르게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 팬데믹 확산 이후 끼리끼리 문화가 퇴조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1인 및 비혼 가구의 증가, 집 체류 시간의 증가, 오프에서 디지철 및 온라인으로 전환의 가속화, 초개인화 등이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혼술, 혼밥, 혼파스타, 혼사우나, 혼커피 등 혼자서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나홀로족의 일상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 죄를 지은 것처럼 남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술을 먹으면 뭔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발적 고립'을 선택해서 식사, 여가 생활 등을 홀로 즐기는 '나 홀로 문화'가 증가하고 있다.


취업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422명을 대상으로 '인싸'와 '아싸' 중 어디에 해당되는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5명이 '자발적 아웃사이더'라고 대답을 했다. 여성의 비율이 조금 더 높았고, 30대와 40대가 더 높았다고 한다. '자발적 아싸'가 된 이유로는 '업무만 제대로 하면 될 것 같아서', '관계나 소속감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서'가 1위로 꼽혔다. '자발적 아싸'가 증가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인간관계의 부담을 줄이고 싶어서', '퇴근 후 자기 시간을 갖기 위해서', '직장의 개념이 약해 소속감이 감소해서'가 주요 이유였다.




'나홀로족'의 삶은 '이롭거나 외롭거나'에 대한 명암이 공존한다. 장점으로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일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그런 시간을 바탕으로 자기 계발도 더 많이 할 수 있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을 즐기는 나홀로족에게 '영화관 데이트는 영화에 대한 모독'이며, '몰입을 방해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혼자 식사를 하면 굳이 불필요한 대화를 할 필요 없이 온전히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홀로 책을 보고, 맥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특유의 끈끈한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나홀로족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홀로족이 된다고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을 통해서 취향이 맞는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검색하고, 어떤 경우는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제는 나홀로족은 유통업계에서도 소비의 큰 손이 되어가고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오래고, 직장동료도 이제 더 이상 예전만큼 끈끈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메타버스(Metaverse)라는 큰 가상세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재택근무 시 화상회의를 할 때 상의만 갖춰 입고해야 하는 불편도 메타버스 안에서는 불필요해진다.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캐릭터(부캐)를 가지게 된다. 조만간 현실 세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재택근무도 이제 일상화되었고, 홈트, 홈쿡, 홈술, 홈카페, 홈바, 홈파티, 홈캉스 등 집이 이제는 모든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은 누구나 쉽게 연결되고, 그 연결은 현실로도 이어지면서 이전의 끼리끼리 문화를 대체하고 있다. 이전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의 끈끈한 연대에서 벗어나 사회관계망을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취미나 취향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사회적 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이제 나 홀로 문화는 소비에서도 중요한 핫 키워드가 되었다. 향후 메타버스 시대를 맞이해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할 Z세대들에게는 기존의 전통적인 끼리끼리 문화보다는 사회관계망을 통해 맺은 느슨하고 약한 관계를 더 선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혼자 있어도 예전만큼 외롭거나 고독하다고 느끼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신이 속한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을 통해서 24시간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홈트, 홈쿠킹, 홈카페, 홈바 등 집의 변화와 함께 나홀로족의 삶의 방식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근원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타인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전의 전통적인 끼리끼리 문화는 이제 갈수록 퇴조를 보일 것이다. 조만간 세상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가상현실 세상을 통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기술과 속도가 빨라지면 그 반대되는 감성과 정서는 메말라가게 된다. 그래서 디지털이 발달의 반작용으로 아날로그의 감성을 찾는 사람들이 최근 늘고 있다. LP판, 필름 카메라, 보드게임, 펜과 노트 등이 다시 인기가 올라가는 것이 바로 사회적 증거다.


혹시 여러분은 전통적인 끼리끼리 문화를 벗어나 나홀로족의 문화를 즐기고, 새롭게 등장하는 메타버스에 올라탈 준비가 되었는가? 사실 현기증이 나긴 하지만 지금부터 천천히 올라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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