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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Mar 28. 2024

내려가는 길

백사실 계곡

 일이 있다는 건 저 위 어딘가에 두고 싶었던 마음이 있는 것이다. 어떠한 마음이었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해도, 기울어진 길을 오르려는 건 투철한 의식의 소치일 테다. 끝없는 상승 들어본 적은 없지만, 끝없는 나락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있다. 늘 우리 주위엔 말없이 추락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르는 데는 한계치가 있으나 떨어지는 데는 획정된 범위 존재하지 않으니까, 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고단한 오름길을 선택하고, 어디까지 오를 운명이나 우연에 기대다.


나는 매일 백사실 계곡까지 이어진 가파른 길을 오른다. 골목들은 자연 모습 그대로 휘어지고 구부러져 산등선까지 닿아 있다. 큰 골목은 다시 가는 샛길을 만들 나처럼 다. 초입의 경사는 15도 계곡에 이르러서는 거의 60도 육박한다. 경사가 큰 구간을 오르는  여간 힘 아니서,  밖을 나서는 모든 행위들에 운동 가미된다.


이런 길을 오를 때면 꼬리뼈에 무게 중심을 잡고, 무릎을 새우등처럼 굽히고, 종아리를 발효된 반죽처럼 부풀여 한다. 단숨에 오르겠다는 욕심보다는 천천히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고르게 숨을 내쉬어야 한다. 간혹 일직선이 아닌 지그재그 엇갈리게 가는 사람들 있다. 오르는 게 힘에 부쳐기도 하고, 그런 자세가 오름길에 무척 수월한 방편이란 걸 아는 까닭지만, 뒷모습은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위태롭.



내가 아무리 열심히 걷는다 해도 막다른 길에선 더 이상 나갈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백사실 계곡으로 가다가 도로에 그려진 '막힌 도로' 표판을 보지 못하고, 막다른 길 앞에서 당황해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사실 그런 길도 자세히 보면 토끼굴처럼 지도앱에 없는, 아주 좁고 작은 길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막힌 도로'란 걸 표시하는 이유는 굳이 우리더러 애써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빌미나 핑계를 주기 위한 것일지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잇길에선 우리가 예상치 못한 감미로운 햇살이나 따사로운 향기 같은 것들이 한데 뒤섞여, 낡은 벽과 낮은 지붕 사이 굴러 다닌다. 골목대장인 길고양이들은 숨바꼭질을 하다가 들 낯선 이의 인기척을 경계하지만, 간혹 그르렁거리며 이방인을 살갑게 반기는 녀석도 있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 우리 집 쓰레기통을 뒤지던 담비는 고양이처럼 인간과 공존하기로 작정한  아닐까.


불과 한 달 전, 백사실 계곡로 가는  함박눈에 묻혔던 적이 있다. 아무도 오갈 수 없는 형국이었을 때, 비상경보를 발동한 주민들은 일사불란장비를 챙겨 골목에 집결했지만, 그날따라 유별나게 눈이 내렸는지 아무리 제설을 해도 눈 좀 줄지 않았다. 결국 하얗게 질린 사람들은 황망히 작업을 포기하고 각기 제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의 족적이 눈 속으로 사라질 때쯤, 하늘은 꿈결 깬 것처럼 거먹구름을 걷어내고 쉼 없는 눈을 그쳤다. 그런 묘한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부질없음과 쓸데없음을 생각했다. 멈춘 골목은 다시 일상을 회복한 것처럼, 평온한 분위기 되살아났다.


아이의 마음은 이미 눈꽃으로 덮인 계곡을 향해 있었다. 마음속에서 파동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재촉했을 것이다. 두꺼운 솜이불을 두른 앙상한 가지, 꼬불꼬불 깔린 흰 양탄자, 눈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부러지는 소리, 바람결에 흩날리는 반짝임 겨울왕국을 만들고 있었다. 



오름길에 막힌  없추장한 장애물 있면 진입을 미뤄야 한다. 그것은 길을 취약하게 만들 우리를 경에 빠뜨릴 수 있으니까, 모든  스톱모션처럼 정지시킨다. 마치 버스 파업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생각하는 건, 그 길의 끄트머리에 있을 또 다른 세계였다.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 찬, 그곳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가고 싶은, 아이는 내게 말했다. "도대체 무얼 망설이고 있는 거야?"


아이는 눈길에 미끄러져 눈도장 찍듯 엉덩방아를 찍으면서도 깔깔댔다. 아이 웃음 속엔 어느 정도의 고통 감당하겠다는 인내깃들었다. 아프지 않 내색이지만, 얼굴은 새빨게졌다. 평소 5분이면 닿을 거리가 지체되어 20분 소요되었다. 간신히 오른 언덕배기에서 바라본 숲은 흰색 페인트로 도장한 것처럼 온통 하얬다. 어떤 경계도 없 순수하고 천연한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서울 도심의 한가운데에 이렇게 멋진 자연이 있다는 걸 숨기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계곡의 눈은 녹지 않고 쌓이기만 했는지 고샅길 눈두덩이가 되었다. 물길과 사람길을 구분하지 않고 하얀 눈밭으로 변해버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 밑에 구멍뚫렸다. 옴짤달싹 할 수 없는데도 아이는 밭을 가는 처럼 거침없 발길질을 다. 어디서 저런 힘이 솟구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얀 풍경에 넋을 읽고 서 있을 때, 아이는 빠져나간 영혼을 소환할 것처럼 소매를 힘껏 잡아당겼다. "여기서 썰매 타는 거 어때?"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계곡을 빠르게 미끄러졌다. 신고 있던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숲이 떠나도록 신환호성을 질렀다. 정수리에서 뜨거운 연기가 피어올랐고, 고드름 물처럼 얼굴에선 땀이 흘렀다. 눈썰매를 타는 동안 오름길과 길이 반복되었다. 겁 잡을 수 없이 빠른 활강 속도는 위험했지만 짜릿했다. 계곡을 가르는 바람처럼 눈밭을 가로질러 썰매가 미끄러졌다. 끝까지 은 후 다시 썰매끈을 잡고 올랐다. 오르는 동안 다음의 미끄럼질이 어지 기대되었다. 그리고 오름길과 달리 내림길에서는 적절한 균형과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틀어져도 썰매가 뒤집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오름길과 내길의 갈래에서 오르기만 했는지 모른다. 언 반드시 내려가야 하는데도,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어떤 희망 품고 오르기에했던  아닐는지. 그래서 진정 이 주는 행복이나 유희를 어버리고 사는 게 아닐까. 눈썰매를 타다가, 오름길보다 길이  즐거울 수 있다 생각 난생처음 해다. 아이 커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길 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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