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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Feb 19. 2024

시지프스의 도발

나는 생각한다

전의 일상 변함없이 돌아가는 쳇바퀴였다. 


세상은 완벽했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삶의 질과 조건 그리고 환경은 신의 섭리로 이미 정해졌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묵묵히 살았다. 아무도 부조리하다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귀족과 노예, 지배와 복, 착취와 노동 신 질서고, 안락한 일상 놀랄 일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주술과 마법적인 산물이었다.


<진격의 거인> 주민들이 견고한 성벽 안에서 평화가 지속되길 바랐던 것처럼, 사람들은 케이지 같은 운명 속에 있어야 안전하다 믿었다. 사람들은 온순한 가축처럼 길러졌고,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었다. 성 밖에선 괴물이 호시탐탐 인간이 해방되길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벌거숭이였, 죽음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오로지 게 의지하고, 의 질서 살아야 했다.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세계로 떠나 험은 무모한 일였다. 인간은 신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물어볼 뿐, '왜?'라고 질문하는 건 허락되질 않았.


자유로운 의지나 열망은 시지프스의 도발로 이어졌다.


모든 것로부터 단절된 세상 불공정과 불평 만연했다. 도그마는 지배층 입맛에 따라 가공되었고, 신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분별할 사람들 없었다. 신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불온한 티그마가 찍히는 걸 감수했고, 기꺼이 시지프스가 되기로 했다. 스스로 생존 문제를 고민고, 닥쳐올 위기를 걱정했고, 행복할 미래를 설계했다. 렇게 사람들은 신들을 농락했던 인 시지를 따라 기 시작했다.


"나는 각한다. 고로 존재하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와 데카르트 이후 사람들은 우주 중심이 아닌 변두리로 밀려, 그곳에서 세계를 객관적으로 라보았다. 평등하고 불공정한 것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했, 누군가 신의 이름으로 정했던 질서에서 해방되었다. 기계적으로 작동되는 세계를 증명했고, 작동 원리모든 것들이 진화와 발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일상은 어제와 같지 않다.


시지프스의 지혜는 람들에게 자유와 물질적 풍요를 져다 주었다. 사람들은 삶에 집중 상대적 빈곤 에 대해 관심 갖 되다. 노동은 본래 자유를 잃은 자들의 몫이었으나, 이제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 선택받았음을 증명했다. 시지프스가 끊임없이 돌을 굴렸던 이유는 죽음을 숨기고 신을 농락 대가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로 결정한 인간의 욕망과 욕구다.


결국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해방되었, 스스로 노동에 구속되는 걸 선택했다.



* 배대웅 작가님 책 <최소한의 과학공부>를 읽 받은 영감으로 글을 씁다. 특히 과학적 사유로서 철학, 알 수록 많은 것들이 보인다는 작가님 문장 강한 충동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세검정초 버스정류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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