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것, 좋아했던 것, 기뻐했던 것, 그리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낡은 앨범 사진을 한 장씩 끄집어낼 때마다 그런 순간을 느낀다. 오래전 시간과 공간은 사진 속에 멈춰 추억이 되었다. 빛바랜 사진에선 평범했던 풍경과 사물도 애틋해지기 마련이다.
가족 행사나 나들이가 있을 때면 아버지가 꺼내 들던 필름카메라. 아버지 취미는 사진 찍기인 줄 알았다. 인화와 현상을 마친 것들이 서재의 책상 서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진 속에 정작 아버지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다만, 사진배경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시선이 있음을 지금은 안다.
10여 년 전 시골 목회를 은퇴하면서 아버지는 흩어졌던 사진과 앨범을 모두 정리했다. 정리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했다. 그 많은 사진들을 고스란히 모아둔 것도 그렇지만, 사진 전부가 필름카메라였다는 게 놀라웠다. 아마도 아버지의 마지막 필름사진은 막내의 대학교 졸업식였을 것이다. 그때도 아버지는 가족사진을 담아내느라 분주했었다.
아버지의 필름사진은 초점이 맞질 않은 것, 빛이 새어 들어간 것, 졸린 듯이 눈이 감긴 것, 붉게 눈이 충혈된 것 등 들여다보면 무언가 하나씩 빠졌거나 부족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웃음이 났다. 카메라 앵글에 담긴 것은 요모조모 엉뚱한 것도 많았다. 그의 사진은 늦봄 순백의 아카시아꽃을 닮았다. 꽃잎을 따서 입에 물면 남몰래 달콤한 향과 꿀이 터졌다. 그것은 설렘이고 그리움일 테다.
몇 해전 이베이를 통해 코니카 C35를 구매했다. 별난 취미를 삼으려는 것보단 내가 태어난 해인 1970년대에 생산되었다는 것, 전에 아버지가 쓰시던 미놀타 카메라랑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것, 35mm 소형카메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같은 모델이어도 기능에 따라 FD, AF, E&L, EF로 구분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중고 카메라 코니카 C35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필름 한 통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총 36장, 뷰파인더에 한쪽 눈을 붙이고 몰입했다. 카메라의 거리와 각도를 조절하면서 숨을 멈추었다. 찰칵! 흔들리는 푸른 바다, 붉은 등대, 흰 배들과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을 담았다. 찰나에 모든 것이 끝났다. 되돌릴 수 없고 삭제할 수도 없는 시간은 이미 과거다. 광량, 거리, 초점 등이 모두 알맞길 바랄 수밖에.
단절시킬 수 없는 아날로그는 사랑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비록 내 모습이 사진 속에 드러나지 않았어도 늘 곁에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내 사랑 역시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또 그렇게 아이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