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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Oct 24. 2024

창신동 봉제골목

미싱

창신동 봉제골목


창신동 봉제골목을 지나 산마루 공원까지 오르는 길은 매우 좁고 가팔랐다. 초행길이었다면 분명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굽은 고갯길을 따라 몸을 휘청이며 기어가듯 올랐다. 그렇게 달동네 끝에 다다랐을 때, 내 발 밑으로 종로 일대가 한눈에 보였다. 저 멀리에선 남산타워가 높은 빌딩들 새로 이쑤시개처럼 뾰족이 쏟아있었다.   


소형차 티코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골목 안에는 작은 가내공장들이 즐비했다. 공장에선 쉴 새 없는 재봉틀 박음질 소리가 들렸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대낮부터 눈부시게 빛났고, 밝은 조명을 쫓은 날벌레처럼 오토바이들이 옷감을 찾아 분주했다. 그것들은 재봉틀의 돌림바퀴처럼 굴러갔고, 시도 때도 없이 우렁찬 천둥소리를 냈다.


나는 골목 어디선가 난쟁이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하늘 높이 공을 쏘아 올릴 것 같아 문뜩 머리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엔 낚싯바늘을 닮은 상현달이 얼핏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다. 동네슈퍼 앞 평상에선 피부색이 서로 다른 주민들 여럿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들은 말끝마다 응응, 이라며 입 안에서 울림소리를 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소주잔을 비우며 얼굴까지 달아오른 취기에 "술이란 모든 걸 기울게 만들지. 우리도 오늘은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비뚤어질 때까지 마시는 게 어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 몸이 약간 한쪽으로 쏠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나는 자원봉사를 위해 이곳에 소재한 이주노동자 쉼터에 갔었던 적이 있다. 그곳은 외국인노동자센터가 본국으로 출국하기 전 이주노동자가 잠시 머물 수 있게 만든 곳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까먹었지만, 아주 외진 골목 끝 돌계단 위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주노동자들이 돌려쓰던 이불들을 작대기로 두들겼고, 발매트 같은 이불에선 묵은 각질과  푸석한 머리카락이 떨어졌다. 묘한 냄새가 공중에 뒤엉켜 코를 자극했을 때, 나는 헛구역질이 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이불들을 털다가 지독한 먼지를 피해 얼굴을 돌렸을 때, 이주노동자들이 멀찍이서 담배 태우는 게 보였다. 그들은 쉼터에서 벌어지는 자원봉사가 무척 성가신 듯했다. 덤덤히 지켜보던 그들의 시선이 유난히 따갑게 느껴졌다. 그날따라 쨍한 볕이 내리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와 비교해 보면, 지금의 창신동 골목은 곳곳에 이국적인 간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마치 이방인의 향수를 달래고, 국내 여행자에겐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언어로 그려진 간판들을 보고 있으니, 나는 마치 빗물에 떠내려온 낙엽처럼 그곳을 경유해 다른 곳으로 떠밀릴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아주 다른, 낯선 이국처럼 말이다.


한편, 봉제골목의 낡은 풍경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늑한 카페와 멋진 레스토랑이 지중해 산토리니의 가파른 절벽에 걸린 것처럼 생뚱맞게 있었다. 리고 정비되지 않은 공장지대와 가옥지대가 뒤섞여 퇴근길 무척 혼잡했다. 그것은 봉제골목과 창신동이 향후 어떻게 변할지 예고하는 듯했다.    


산업화 시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시다와 재단사 이야기는 아직 창신동 봉제골목에 있다. 그곳에선  녹록지 않은 서민들이 재봉틀 노루발에 의지해 땅을 딛고 산다. 그들은 빈틈없이 일상을 바느질하며 동대문시장에서 맡긴 용역을 처리한다. 자투리 천들을 담은 비닐봉지들이 곰 인형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있다. 누군가 그것들을 가져다가 천 가방이나 앞받이를 만들기도 한다.


유독 창신동은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도시개발과 도시재생이란 정책 사이클을 오갔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동안, 주민들은 각자의 편으로 갈라선 채 갈등을 키웠다. 현재까지 아무것도 완성된 게 없는 걸 보면, 결국 죽 쑤어 정치인들에게 좋은 일만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사정과 무관하게 창신골목시장에선 통통한 족발들이 나무도마 위에서 손질되어 매운 불맛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구름을 태운 듯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가 금세 캄캄해졌다.


어둔 저녁이 내린 창신동 산중턱, 오밀조밀 붙은 빌라들이 노란 불빛을 켰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이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장 늦게 불을 밝힐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을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불빛들은 어두운 밤길을 비추던 은하수 같았다. 하지만 어떤 불빛도 사실 여유로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가까이 들여다본 적이 없기에 낭만적이라 여겼을 뿐이다.


나와 같이 동네를 지나가던 사람은 창신동의 풍경에 빠져 감성에 젖었을 테고,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여행자의 감성을 피해 일부러 골목 깊숙이 숨었을 테다. 나는 듬성듬성 잘린 자투리 천처럼, 떨어져 있는 각각의 골목들이 낭만으로 이어지길 바랐던 것 같다. 내게 익숙지 않은 세계에선 그런 일들이 넘쳐도 좋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게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창신동 산마루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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