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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Sep 18. 2024

출구를 찾아서

시청역

시청역 3번 출구


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스러미처럼 일어난다. 그렇게 불쑥 찾아온 일들은 우리의 일상을 지루할 틈 없이 다. 예년보다 뜨거웠던 폭염이나 기록적인 강수량 등 변덕스러운 일기 때문에라도, 일상은 변화무쌍하며 오늘은 어제와 분명 다르지만, 나는 어제와 같은 출근을 반복한다.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도, 북한의 미사일이 서해 바다에 떨어졌을 때도 그랬다. 나름 정해진 대로 살다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그렇게 살아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내 주변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똑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말로 그렇게 된 것인 양 평온한 일상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이 허상이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생각과 마음은 갑자기 복잡해진다. 그런 복잡함은 감정의 방아쇠를 잡아당기고, 그렇게 촉발된 어떤 감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추스를 수 없게 된다. 가끔씩 그런 감정에 빠져 좀처럼 진정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한다.


딴생각을 하다가 코 앞에서 7022번 버스를 놓다. 다시 버스를 기다리는데 뙤약볕이 쨍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1711번 버스가 곧장 정류장에 들어왔다. 사람들로 복닥거리는 버스는 경복궁역을 지나 광화문으로 향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손가락 브이를 하는 여행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폭염으로 살아있는 것들이 헐떡이고 있는데도, 도시의 풍경을 담으려는 여행객 얼굴에선 힘든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광장 분수대가 이들을 응원할 것처럼 안주하지 않고 물줄기를 뿜어댔다.


광화문을 빠져나온 버스가 시청역에 멈추자 나를 포함한 무리가 일제히 하차를 했다. 길가엔 이른 아침부터 내린 비에 흠뻑 젖은 수국들이 하얗게 빛났다. 버스에서 하차한 승객들이 3번 출구 쪽으로 다람쥐처럼 걸음을 했다. 대부분 흰 상의와 검은 하의 차림이었다. 사람들이 소실점처럼 지하철 입구에서 아득해졌다. 그러다 나는 지하철역에 나가는 길만 있고, 들어가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하철 역사에서 대개 볼 수 있는 표시는 EXIT였다. ENTRANCE라는 표시는 거의 보이질 않았다. 마치 승객에게 해방을 선사할 것처럼 출구 표시만 가득하다는 게 생소했다. 들어가는 길은 따로 표시가 필요하지 않지만, 목적지에 다다라선 어디로 향하는 출구인지 중요하다는 뜻 같았다. 사람들이 일일이 출구 번호를 세며 역사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출구는 또 다른 입구로 연결되곤 했다. 지난했던 삶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고통의 입구가 시작될 때도 있었다. 아무튼, 일상의 우울감은 따로 입구를 표시하지 않아도 쉽게 스며든다. 그러나 우울감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출구를 찾아야 한다. 내가 찾는 행복이 몇 번째 출구에 있는지 미리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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