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er shop
이상한 나라에 있는 것은 앨리스가 아니라 폴이었다.
봉제인형 찌찌가 현실의 시간을 멈추고 마법의 세계로 진입했을 때, 폴이 그곳에 없었더라면 대마왕과의 혈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폴은 불가사리처럼 가만있질 않았고, 성게가시처럼 계속 꿈틀대며 낯선 세계로 눈을 돌렸다. 왜, 폴은 그랬을까?
이발소에 다닌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지난해 3월 어느 날 문뜩 따스하게 불어온 호기심을 쫓아 처음 이발소에 갔었다. 그곳에서 머리를 한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알듯 말듯 짓는다. 전망이 좋은 몽마르트르 언덕 카페에 앉아, 우연히 벽면을 가득 채운 오방색 호랑이를 본 것처럼 생소한 것이다.
물론 개인적 취향이나 호불호에 따라 이질적 감정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나는 이런 생경한 경험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도 여태 비슷한 또래의 손님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건, 사람들의 의아심에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나의 단골집 이발사는 과묵한 성격이어서 시시껄렁하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낯가림이 심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괜한 질문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신경 쓰지 않아서 좋았다. 다소 투박하고 거칠긴 해도 매우 꼼꼼한 손을 가졌고, 그가 격렬하게 열정적인 가위질을 할 때면 푸석한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발소에는 나름대로 룰도 있다. 오직 하나의 스타일만 고집하기, 말 없으면 알아서 깎아주기, 단순하게 주문하기, 결과물에 대해선 이의제기 하기 없기 등, 이발소에 참 어울지 않는 암묵적인 룰들이다. 예술가가 아닌 이상 이발 기술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사소한 것들은 한 움큼씩 잘려나간 머리카락처럼 훌훌 털어내고, 중요하거나 행복한 일에만 몰두하자는 의미로도 보였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덜이 이곳 이발소를 먼저 알았다면, '이발소에서 정의가 시작되었다'라고 선언했을 것이다. 여전히 이발소 대부분은 예약 없이 현장 선착순으로 운영되고 있고, 웃돈을 준다거나 대신 줄을 기다린다고 해서 순서를 바꿔주진 않기 때문이다. 정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누군가 이발소에 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다시 아이가 된 것 같아서라고 하겠다.
어릴 시절 동경했던 이발소 면도 크림을 듬뿍 바르고, 뜨겁게 데워진 타월 마사지를 받으며, 애프터 쉐이빙 로션으로 마무리까지 하고 나면, 이내 어른이 되었다는 안도와 흥분이 밀려왔다. 거울에 반사된 아이의 얼굴 위로 흐뭇한 아저씨 미소가 번지면서 말이다. 찢다만 일력처럼 이발소의 시간은 아직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 오늘도 백발이 성성한 단골집 이발사는 날렵한 가위를 요술봉처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낯선 세계로 떠날지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