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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Mar 15. 2024

거울로부터의 해방

거울


"지금 거울을 통해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면, 당신은 보이는 대로 믿을 수 있는가?"


등굣길을 나서기 전 이렇게 다. 멀쩡한 거울을 앞에 두고서 아이는 확신이 서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얼굴을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껌뻑거렸다. 분명 집에서 거울로 보았을 텐데, 학교에 가면 멀쩡했던 얼굴에 부스러기 같은 눈곱이 생겼다고 했다. 틀림없이, 거울 속임수가 있뜩잖았다. 그래서 아이는 거울을 뢰할 수 없 빠만 믿 테니, 자신의 눈곱 상태 꼼꼼히 확인 달라 . 그 믿음을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언짢은 눈곱에 조응하는 믿음이 아니길 바랐다.


예쁜 사람만 보이는 거울 골목에서 우연히 만났다. 


삼월의 어느 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에서 가까운 문래동 창작촌에 갔었다. 어깨를 양보해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는 비좁 반듯한 골목들이 여러 갈래로 있었다. 오래된 철공소 간판들이 촘촘했지만, 평일인데도 문을 연 철공소는 많질 않았다. 오히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규모 갤러리와 감성적인 카페 듬성듬성 빈 골목을 채워 행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곳곳의 담벼락과 길모퉁이에선 화려한 벽화해석 불가한 문자들이 예술과 낙서의 경계를 오가며 이질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조금 더 깊숙이 골목으로 들어가자, 원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절삭공구의 날카로운 소리, 폭죽처럼 터지는 용접 불, 비늘 모양의 철편 등이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미로 같이 생긴 골목들을 한참이나 돌다가 거울을 보게 되었다. '예쁜 사람만 보이는 거울'이라니, 무심코 지날 칠 수 없어 가까이 다가다. 연탄재를 삼킨 것처럼 흰 잿가루를 묻힌 채, 입술을 꼭 다문 남자가 거울 속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문래동 청작촌


본래 그대로라도 주관적 태도에 따라 거울 속 모습은 왜곡되다. 


겉모의 변화가 없는데거울에 비친 사물과 자신의 욕망을 연결시킬 때, 처럼 느끼는 것이다. 거울 속에 영된 습이 정말로 자신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틀림없이 모든 좌우와 앞뒤가 거꾸로인 존재일 뿐이다. 그것 실재하는 나를 증명할 순 있다고는 하나 본질적으로 다른 것도, 거울 속의 나를 통해 실존 가치와 욕구가 증대되길 기대다. 그러다 결국 진실에서 멀어지, 왜곡된 사실 인해 망상의 늪에 고야 마는 것. 마치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언제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일 줄 착각하는 것이다.  


거울은 볼 수 있는 것만큼 보여줄 뿐 그 이상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 내가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내 시선이 멈추어 있는 공간이다.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거나 멀리 떨어진 간격을 당기는 건 거울의 몫이 아니고, 거울은 오직 '지금'과 '여기'에 있는 사물을 모아 투영할 뿐이다. 거울은 심장이 없어 얼음처럼 차갑고, 오롯이 시각으로만 사물을 탐색하고 관찰한다. 거울 틀 밖에 다양한 것들이 존재할 것이나, 틀을 벗어난 세계는 미지의 영역이어서 거울은 반드시 틀 안에 있는 것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정말로 무언갈 거울로 들여다보고 싶다면, 냉정한 시선으로 거울 속 고요함을 진지하게 쳐다보아야 할 것이다.


거울 속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심과 슬픔에 빠진다. 거울 속 나는 출구도 없 감옥에 갇힌 존재여서, 끝없는 고통의 질곡을 끝내고자 소멸하려 들지만, 쉽게 끝낼 수도 없는 몸을 깨닫게 된다. 작가 이상은 그러한 몸을 '불사신'이라고 했고, 우리는 유령이라 부른다. 그리고 울을 보고 있는 현실에서, 유령을 거울 밖으로 꺼내어 해방시킬 방법을 찾을 순 없다.



거울 속에 보이는 것 말고도 거울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더 아름답기도, 더 무겁기도 하다. 거울 속에 보이는 것은 거울 밖에 보이지 는 것으어졌고, 그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보이는 것만을 고집스 주장하는 것은 거울 밖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시키 것이다. 결코 단절할 수 없기에, 거울 속의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것이 없다면 울 속 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거울에 비추인 것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존재일 수 있다. 그리고 내 속엣것도 거울 속에선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낮에도 햇살이 닿지 않을 만큼 깊숙한 곳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다. 


이제껏 못 보았던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 위해 거울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다. 그리고 거울 속에 함몰되었던 나 되찾기 위해서라도 내 속엣것들, 감정이나 사상 같은 것들을 가만히 열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겠다. 래야, 비로소 이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볼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문래동 철공소
문래동 창작촌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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