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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
모카에서 시작된 향기의 항해

“모카항, 커피가 바람을 타던 시대”

by 이진무



☕ 모카항에서 시작된 향기의 여정


― 예멘 상인들과 커피 독점의 시대


커피가 처음 세계로 나아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지도 위의 한 작은 항구에 시선이 멈추게 됩니다.

바로 예멘의 모카(Mocha) 항.

지금은 커피 메뉴 이름으로 더 유명하지만, 15~16세기 모카항은 커피가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관문이자 심장부였습니다.


19세기 예멘의 모카항구.jpeg (19세기 예멘의 모카항)


금주 문화 속에서 피어난 ‘각성의 음료’


이슬람 세계에서 술은 금지되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커피였죠.
사막의 밤을 지나는 상인들, 새벽까지 경전을 읽는 신앙인들, 이들은 커피를, 향을 즐기는 음료가 아니라, 정신을 맑게 해주는 동반자로 대했습니다.

그 시절 커피하우스에는 이야기꾼, 시인, 사상가들이 모여들었고, 그곳은 단순한 다방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 정치적 담론이 오가는 작은 세계였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이슬람 상인.jpeg (이슬람 상인)


■ 예멘 상인들의 ‘독점’ 전략- “커피를 절대 밖으로 못 나가게 하라!”


17세기 예멘 모카 항은 세계 유일의 커피 수출항이었어요.

당시 이슬람 세계는 커피에 ‘전략물자’처럼 가치를 부여했고, 유럽으로 원두나 묘목이 나가는 것을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예멘 관리들은 배에 오르는 모든 상인을 검사하며 “원두는 팔아도, 씨앗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생두는 절대 안 된다!”라고 명령했죠.

그래서 유럽 상인들은 커피를 마신 후 재를 뒤져 씨앗을 찾고, 일부는 배설물까지 건져 냈다는 기록도 있어요. “혹시 싹이 날지도?” 하는 기대였죠.

하지만 로스팅된 씨앗은 당연히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럽은 완전히 ‘커피 고립’ 상태였어요.


예멘 관리.jpeg (예멘 관리)


■ 예멘–오스만 vs 유럽: “커피 시장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


당시 예멘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고, 오스만은 커피 무역을 막대한 세금원으로 삼았습니다.

커피는 말 그대로 금을 대신하는 검은 금(Black Gold)이었죠.

유럽은 이슬람 세계를 상대로 향신료, 비단, 사탕, 커피 등을 놓고 보이지 않는 경제 전쟁을 하고 있었고, 커피는 그중 가장 비싸면서도 중독성이 강한 ‘전략 무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커피가 유럽 귀족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직접 재배해 독립적인 공급망을 갖자!”며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예멘의 철저한 봉쇄 앞에 모두 실패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결국 ‘스파이’가 등장합니다.


오스만제국 군사.jpeg (오스만제국 군사)


■ 인도 성자가 “몸에 숨겨” 커피를 밀반출하다


커피가 처음 아시아에 전해진 이야기는 거의 모험담에 가깝습니다.

인도의 수피 성자 바바 부단(Baba Budan)는 성지순례 중 예멘 모카에서 커피를 맛보고 반해 버립니다.

문제는 씨앗을 절대 가져갈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생두 7알을 자신의 옷 안쪽, 허리띠에 꿰매어 몰래 숨기고 인도로 돌아왔다고 전해져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목화씨를 붓대 속에 몰래 숨겨 들여왔다고 기록돼 있죠.
어쨌든 이 7알이 바로 인도에서 처음 재배된 아라비카 커피의 ‘조상’이 됩니다.

이 사건은 예멘·오스만의 독점 체제를 크게 흔든 대사건이었어요.

이후 유럽인들은 더 대담한 방법을 찾게 되죠.


커피를 밀반출하는 인도 성자.jpeg (커피를 밀반출하는 인도 성자)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비밀 작전


17세기 말, 네덜란드는 당시 세계 최고의 상업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멘에서 커피 묘목을 훔쳐내기 위해 상인들을 잠입시켜 ‘살아 있는 나무를 빼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묘목들은 곧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심어졌고, 자바 커피는 기하급수적으로 번지며

“세계 커피 지도를 바꾼 사건”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럽의 고위층은 이 자바 커피를 “예멘 모카보다 맛이 떨어지는 싸구려”라고 무시했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예멘 항구가 봉쇄되자, 결국 모든 국가가 “자바 커피라도 달라!”며 줄을 서게 됩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jpeg (동인도 회사)


■ 프랑스 해군과 커피 묘목: 사랑과 음모의 이야기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전설적 사건이 벌어집니다.

프랑스 해군 장교 드 클리외(Chevalier de Clieu)는 파리 왕립 식물원에서 겨우 한 그루 남은 커피 묘목을 몰래 가져와 카리브해로 향합니다.

하지만 항해 중 해적의 공격과 물 부족, 폭풍, 경쟁자의 방해(실제로 묘목을 훼손하려 했다는 기록도 있음) 등을 겪으며, 그는 자신이 먹어야 할 식수 일부를 커피 묘목에게 나눠주는 희생을 했다고 해요.

그 한 그루가 카리브해 전역에 퍼지며, 오늘날 브라질·콜롬비아 커피의 조상이 됩니다.


폭풍에 휩싸인 프랑스 해군.jpeg (프랑스 해군)


■결국 세계를 제패한 것은 “예멘이 아닌 유럽”


예멘은 커피의 발상지였지만, 지나친 봉쇄와 국제정세 변화, 농업기술 부족과 유럽의 스파이·밀수·재배 경쟁 등으로 인해 주도권을 잃었고, 결국 세계 생산량은 브라질 → 콜롬비아 → 자바 →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커피 애호가들은 예멘 모카를 “세상의 첫 향기”라고 부르며 특별하게 여깁니다.


커피는 항구를 떠날 때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모카를 떠난 커피는 인도에서 새로운 재배 기술을 만나고, 자바에서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의 씨앗이 되었으며, 유럽에서는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모카항의 작은 녹색 열매가 열어젖힌 세계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확장 여행을 계속 중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이 한잔의 커피 속에는 언젠가 누군가가 은밀히 품고 항해하던 작은 묘목의 모험까지 담겨 있는 셈입니다.


향긋한 커피.jpeg


“커피는 항구를 떠날 때마다 새로운 문화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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