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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 커피 기원 세 가지

“불 속에서 피어난 향기”

by 이진무

담배를 너무 자주 피워서 죽을 것 같던 적이 있었습니다. 꽤 오래전 일입니다.

제가 한창 담배에 빠져 있을 때, ‘솔’이 제일 인기 있는 담배였습니다. 당시 가격으로 한 갑에 500원이었어요. 처음엔 하루 한 갑이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어느새 두 갑, 세 갑으로 늘어났습니다. 용돈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선택한 게 200원짜리 ‘청자’였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는 분 있나요? 니코틴이 제일 많기로 악명 높았던 그 담배. 다섯 개비를 한꺼번에 물고 피우면 시가 맛이 났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가래가 심하게 끓기 시작했습니다. 침을 뱉으면 검은 니코틴이 섞여 나왔어요. 그제야 덜컥 겁이 나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X-레이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호흡기에 니코틴이 꽉 차 있다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담배를 끊지 않으면 오래 살기 힘듭니다.”

그래도 담배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를 구해준 게 바로 커피였습니다.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손이 허전할 때, 입이 심심할 때, 커피가 그 빈자리를 채워줬습니다.

어떻게 보면 커피는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커피에 더욱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서, 제 인생을 바꿔준 존재니까요.


커피는 누가 처음 마셨을까?


―염소치기 칼디에서 예멘의 수피 수도승들까지, 커피 기원의 세 가지 이야기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커피 한 잔.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과연 누가 이 쓴맛의 향기를 처음 발견했을까?”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커피는 수많은 문화와 사람들을 거쳐 지금의 우리에게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커피를 누가 최초로 마셨는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신 전설과 설화, 그리고 조금은 믿음직한 역사적 단서들이 우리 앞을 가볍게 흔들리며 지나갑니다.

오늘은 그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커피 기원의 세 가지 이야기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1. 에티오피아의 염소치기, 칼디(Kaldi)의 붉은 열매

아프리카 목동의 모습.jpeg


커피 기원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9세기경 에티오피아 고원 어디쯤, 이름마저 낭만적인 한 염소치기 ‘칼디’가 등장합니다.

어느 날 그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평소 얌전하게 풀만 뜯던 염소들이 고원에 있는 붉은 열매를 먹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산비탈을 뛰어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칼디는 호기심 많은 청년이었을까요? 그 열매를 따서 근처 수도원에 가져갔습니다.
수도승들은 처음엔 의심했지만, 열매를 달여 마셔본 뒤, 밤샘 기도에 도움이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전설은, 커피가 어떻게 ‘깨어 있음의 음료’가 되었는지 아름답고도 단순하게 설명합니다.

물론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이 전설이 커피에 담긴 ‘각성’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죠.


2. 예멘의 수피 수도승들 ― 역사적 사실에 가장 가까운 기록

커피를 마시는 수도승.jpeg


전설보다 사실에 조금 더 가까운 이야기를 찾는다면, 15세기 예멘의 수피 수도원을 향해야 합니다.

예멘의 모카(Mocha) 지역. 지금은 커피 이름으로 더 친숙한 그곳에서, 밤새 경건한 기도에 몰두했던 수피 수도승들이 정신을 깨우기 위해 마시던 음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카하와(qahwa)’, 즉 ‘각성의 음료’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이 기록은 현재 많은 학자들에게 “커피 문화의 실제적 기원은 예멘”이라는 합리적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커피가 관능적인 향을 넘어 종교적 의미와 수행의 도구로도 쓰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커피의 ‘기분 좋은 집중력’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3. 불 속에 던져졌다 되살아난 열매 ― 로스팅의 기원설

커피 로스팅의 기원.jpeg


세 번째 이야기는 조금 더 드라마틱합니다.

어떤 수도승이 이 붉은 열매를 마귀의 것으로 오해해 불 속에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 속에서 구수한 향이 피어올랐고, 수도승들은 향에 이끌려 열매를 볶아 우려 마시기 시작했답니다.

이 설화는 커피 로스팅의 기원을 설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커피 향의 ‘운명적 매력’을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커피는 처음부터 사람을 끌어당겼던 것일까요?


커피는 역사보다 이야기로 더 오래 남는다


엄밀한 역사적 사실을 따지자면 예멘 수피 수도승들의 기록이 가장 믿을 만한 기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칼디와 염소들의 이야기를 더 사랑합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커피의 역사는 연구실 문서보다 사람들의 일상 속 이야기로 더 오래 살아남는 음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커피 한 잔에도 어쩌면 에티오피아 고원의 염소들, 예멘의 밤을 지새우던 수도승들, 그리고 불 속에서 피어오른 향기까지 스며 있는지도 모릅니다.

커피 기원의 전설들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한잔의 커피에는 수백 년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따뜻한 커피잔과 연한 빛.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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