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탁호텔 커피룸 이야기”
1890년대의 한양, 겨울의 공기가 차갑게 내리깔린 아침이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묘하게 낯선 풍경이 있었어요.
붉은 벽돌, 커다란 창문, 그리고 그 창 너머로 퍼져 나오는 향기.
그 향은 그때까지 조선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손탁호텔’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커피룸’이 있었습니다.
한양 사람들에게는 발음하기도 낯선 말, ‘커피’.
손탁 여사는 독일에서 온 여성으로, 고종의 신임을 얻은 서양인이었어요.
그녀는 유럽의 호텔 문화를 한양에 들여오고 싶어 했죠.
하루는 고종이 직접 물었다고 합니다.
“서양인들은 그 검은 물을 왜 그리 좋아하오?”
손탁 여사는 잔잔히 웃으며 답했습니다.
“전하, 그건 정신을 깨우는 음료입니다. 한 잔의 커피는 생각을 맑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요.”
그날 이후, 덕수궁 안에서도 은은한 커피 향이 피어올랐다고 합니다.
황제와 외국 사절이 함께 앉아 커피를 나누던 장면.
그건 조선이 ‘근대’라는 낯선 문 앞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순간이었습니다.
손탁호텔의 커피룸은 그 자체로 작은 외교무대였습니다.
조선의 신문물에 호기심을 보이던 외국인들, 서양식 옷을 입은 통역관,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조심스레 커피를 마시던 조선의 젊은 관료들.
그들은 커피의 쌉싸래한 맛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 맛이 주는 ‘세련된 세계의 감각’에 끌렸습니다.
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어요.
그건 ‘서구 문명과 조선의 거리’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이 검은 물 한 잔이면, 우리는 더 이상 외딴섬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던 젊은 관료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커피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조선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손탁호텔에서 시작된 이 작은 문물은 이후 경성의 ‘다방’으로, 명동의 문화로, 충무로와 대학로의 정서로 이어졌습니다.
1930년대의 명동 다방 ‘남촌’에서는 시인과 기자, 화가들이 밤늦도록 담배를 피우며 토론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조선의 근대란 무엇인가.”
그들의 테이블 위에도 언제나 커피가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르네상스’, ‘문토’, ‘은성’ 같은 이름의 다방이 문인들의 아지트가 되었죠.
커피 한 잔이 문학의 불씨를 지피고, 음악과 연애, 이상과 현실이 뒤섞였습니다.
손탁호텔의 향기는 그렇게 세월을 넘어 이어졌습니다.
손탁 여사는 훗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명동에는 여전히 커피 향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향은 이제 조선 사람의 것이 되었습니다.
한 잔의 커피는 단순한 서양의 풍속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고르려는 근대인의 첫걸음이었다.
☕ 손탁호텔 커피룸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화들
1. 고종과 손탁 여사의 깊은 관계
앙트와네트 손탁(Antoinette Sontag)은 고종 황제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어요. 특히 아관파천(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시기) 동안, 손탁 여사가 커피를 진상해서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어요. 호텔 커피숍은 단순한 다방이 아니라, 외교와 사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정치적 밀담이 오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2. 한국 최초의 서양식 커피하우스
손탁호텔 1층에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서양식 커피숍’이 있었고, 이는 한국 최초 호텔 다방으로 여겨집니다. 이 커피숍은 단순한 숙박객 대상이 아니라, 외교관, 지식인, 정계 인사들이 모이는 사교장으로 활용되었죠.
3. 비밀회의 공간으로 활용된 ‘비밀 방(secret room)’ 설화
일부 기록에 따르면, 손탁호텔의 커피숍이 외교적 음모나 정치 전략을 논의하는 비밀 회의실처럼 쓰였다는 증언이 있어요. 특히 일본 측 인사가 ‘손탁호텔의 비밀 방(secret room)은 외교 음모 논의의 장소였다’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4. 고종의 커피 사랑과 커피룸의 상징성
고종 황제는 커피(당시엔 ‘양탕국’이라고 불렸다)를 꽤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손탁 여사는 커피를 통해 황실과 외국 외교관 사이의 다리를 놓은 인물로 평가됩니다.
즉, 커피룸은 단순한 식음 공간이 아니라 ‘근대 외교와 개화기의 상징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5. 호텔의 운명과 역사적 의미
손탁 여사는 1909년에 호텔을 매각하고 한국을 떠났고, 호텔은 이후 이화학당 기숙사로 바뀝니다. 1922년에 호텔 건물은 철거되었고, 지금은 그 자리에 표지석만 남아 있어요. 그럼에도 손탁호텔은 문학 · 연극 소재로도 많이 다뤄졌습니다.
지금도 어느 골목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보면 문득, 그 오래된 손탁호텔의 커피룸을 상상하게 됩니다. 서양의 향기와 동양의 호기심이 섞여 있던 그 공간. 그때 처음, 한양 사람들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커피는 단지 음료가 아니라는 것을. 그건 ‘낯선 세계로 가는 첫 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