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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이야기 - 나폴레옹과 커피

“커피가 만든 제국의 그림자”

by 이진무

유럽 역사를 들춰보면, 커피는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얼굴을 내밉니다. 혁명과 전쟁, 지식인의 토론장, 그리고 거대한 제국의 흥망성쇠까지. 그 중심 어디엔가 늘 한 잔의 커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커피 한 잔을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찾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1) 나폴레옹은 ‘커피 중독자’였다

나폴레옹은 하루에 커피를 10잔 넘게 마셨다는 기록이 있어요. 특히 진한 아라비카를 끓여 마시는 게 취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커피포트를 들고 다니고, 야전에서 커피를 내리라고 장교에게 지시할 만큼 커피 애호가였습니다.

그는 유명한 말도 남겼습니다.
“커피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
그에게 커피는 군사 전략과 결단력의 연료 같은 존재였죠.


2) 전투 전 반드시 커피


1800년대 초 프랑스군이 이집트 원정을 떠났을 때, 나폴레옹은 병사들에게도 커피를 지급했어요. 프랑스군에게 커피는 정신을 깨우고, 공복감과 피로를 버티게 하는 ‘에너지 드링크’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병사들은 자신들을 ‘les buveurs de café(커피를 마시는 자들)’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나폴레옹과 군대.jpeg


3) 커피 금지령 vs 나폴레옹의 모순


1796년, 나폴레옹은 국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커피 수입을 제한하고 세금을 크게 올렸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나폴레옹 본인은 여전히 커피를 끊지 못했다는 거죠.

그런 이유로 프랑스 시민들 사이에서는 ‘커피는 금지지만, 황제가 마시면 괜찮은가?’
같은 불평이 돌았다고 해요. 그런데도 나폴레옹은 신경조차 안 썼어요. 그만큼 커피는 그의 ‘필수품’이었으니까요.


4) 오스트리아 빈 카페 문화의 탄생과 나폴레옹


1683년의 ‘빈 포위전’은 나폴레옹 시대보다 조금 앞서지만, 유럽 커피 문화와 나폴레옹은 긴 맥락에서 연결됩니다. 오스트리아가 오스만을 물리친 뒤, 전리품 속에서 발견한 커피콩이 빈 카페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죠. 그리고 100여 년 후 나폴레옹 전쟁 시기, 빈과 파리의 카페는 정치 토론의 장, 혁명 사상의 중심, 지식인 네트워크로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즉, ‘카페=혁명의 공간’이 되면서 나폴레옹도 카페 문화를 전략적으로 경계하기도 했어요.


유럽의 카페.jpeg


5) 유배지에서도 커피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 후 엘바섬과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됐을 때도 나폴레옹은 끝까지 커피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인트헬레나 기록에는 그가 아침에 반드시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적혀 있죠.

그의 말년 일기에서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이 아침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라고 남겼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유배지.jpeg


6) 커피와 정치: 시민 vs 황제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에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시민사회, 혁명정신, 소통과 토론의 상징이었습니다. 카페는 황제를 찬양하는 장소가 아니라 비판과 토론의 장소였기 때문에, 나폴레옹 입장에서는 커피를 사랑하면서도 ‘카페’라는 공간은 불편한 존재였던 셈입니다. 이런 모순적 관계가 나폴레옹과 커피의 흥미로운 부분이죠.

프랑스혁명의 주역들.jpeg


커피는 나폴레옹의 정적인 ‘카페 문화’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었습니다. 과거 파리의 카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모여 혁명정신을 논하는 공간이었고, 토론과 사상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즉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장소. 그러니 황제 입장에서는 커피는 좋아도 ‘카페’는 경계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커피를 완전히 떼어낼 수 없었죠. 인간의 약점이자 솔직한 취향이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과 커피의 관계를 돌아보면,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누구의 삶이든, 어떤 시대든 간절하게 붙잡는 작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요. 나폴레옹에게 그것이 커피였다면, 우리에게도 각자의 커피가 있을 겁니다. 그건 실제 커피일 수도, 음악일 수도, 혹은 밤늦은 산책일 수도 있습니다.


한 잔의 커피가 한 인간의 일생을 따라다닌다는 건 어쩐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거대한 제국의 흥망도, 역사의 소용돌이도, 결국 작은 잔 하나의 온기를 이기지는 못했다는 사실이.

따뜻한 커피잔과 연한 빛.jpeg


“커피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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