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는 군침을 꿀꺽 삼키고는 세상 더없이 깍듯하게 말했다.
“아름다운 누나! 형님! 이렇게 추운 날 데이트하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그 구름 같은 거… 저에게 쪼끔만 나눠주시면 어떨까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두 분 앞날에 복이 아주 그냥 쏟아질 겁니다!”
남자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야! 우리 둘이 꿀 떨어지게 데이트하는 거 안 보여?
어떤 일이 있어도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걸 방해하면 안 된다는 철칙을 모르는 거야?”
여자도 눈을 홱 치켜뜨면서 거들었다.
“게다가 뭐? 솜사탕을 달라고?
우리가 지금 이거 먹으면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데…
아, 진짜 너무 분해서 안 되겠어.
너희 부모님에게 가자. 단단히 따져야겠어.”
여자가 피노키오를 잡으려고 손을 뻗자, 피노키오는 깜짝 놀라 줄행랑을 쳤다.
갑자기 뛰었더니 배는 더 고파졌다.
그때 피노키오와 비슷한 체구의 아이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손에는 딱딱하게 굳은 주먹밥을 들고 있었다.
피노키오는 그 주먹밥이라도 먹고 싶어서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아이는 피노키오가 자기 주먹밥에 눈독 들이는 걸 눈치채고는 얼른 뒤로 감춰버렸다.
피노키오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친구야… 나 좀 살려주라. 나 오늘 점심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아.
내가 쓰러져서 차가운 시체가 되기 전에 소원 좀 들어줘. 너 주먹밥 한 입만 먹게 해줘. 제발 부탁이야…”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점심부터 굶었다고? 난 어제부터 굶었는데…”
피노키오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주먹밥을 뺏으려다가, 아이가 어제부터 굶었다는 말에 슬그머니 손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바싹 마른 얼굴에는 땟국물이 줄줄 흘렀고, 너무나 가냘파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았다.
피노키오가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 안 추워? 어떻게 그런 옷을 입고 다녀?”
“춥긴 하지만, 부모님이 안 계셔. 그래서 나한테 옷을 사 줄 사람이 없어.”
피노키오는 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걸 보고는 제페토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가슴이 찡했다.
“그러면 너 어제부터 굶었다면서 주먹밥은 왜 안 먹어? 나쁜 사람한테 뺏기면 어쩌려고?”
“집에 동생이 두 명이나 있어. 나는 배고파도 참을 수 있지만 동생들 배고픈 건 못 참아.”
피노키오는 결국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엉엉! 미안해…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네 주먹밥을 뺏으려고 했어. 나를 용서해 줘…”
그 아이는 괜찮다는 듯이 말했어요.
“괜찮아. 어쨌든 너는 내 주먹밥을 뺏지 않았잖아.”
“하지만 너무 배고프다…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안 그러면 진짜 주먹밥을 뺏을지도 몰라.”
“정말 배고픈가 보구나. 그럼 이렇게 해봐. 내가 온 쪽으로 쭉 따라가면 조그마한 빵집이 하나 나올 거야.
그 집 할아버지는 마음씨가 진짜 좋으니까, 말만 잘하면 너한테 빵을 줄지도 몰라.”
피노키오는 아이의 말대로 조심스레 길을 따라 올라갔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찬바람은 뺨을 따갑게 때렸다.
입김은 나오자마자 얼어붙는 것 같았다.
온몸이 덜덜 떨려오던 그때, 어디선가 따끈따끈한 빵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고소하면서도 달달한 냄새, 마치 누가 갓 구운 크루아상 사이에 버터를 가득 넣은 것처럼.
피노키오는 코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를 따라갔다.
그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아니, 울렸다기보다는 북을 두드리듯 요란했다.
“조용히 좀 해!”
피노키오는 배를 토닥였지만, 꼬르륵 소리는 쉼 없이 흘러나왔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냄새의 근원지에는 굴뚝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작은 집이었다.
따뜻한 초콜릿 같은 벽과 둥글둥글한 지붕. 보기만 해도 들어가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달려온 거리 때문일까, 피노키오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여보세요? 안에 누구 계세요?”
잠시 후, 안에서 낮고 거칠며 딱 봐도 인상이 안 좋은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누구야?”
피노키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그 아이 말로는 친절한 할아버지가 있다고 했는데, 이 목소리는 딱 마귀 영감 같은 느낌이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움직일 수도 없었다.
배는 계속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입은 바싹 말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피노키오는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말했다.
“저는 피노키오예요. 너무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요. 빵 한 조각만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제발요…”
무릎을 꿇고 손을 내민 피노키오는 스스로 스피커가 말하던 구걸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지금은 진짜 빵 한 조각이 더 중요했다.
그때, 창문 커튼이 살짝 젖혀지고 한 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인상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주걱턱에 잔뜩 찌푸린 눈썹, 눈빛은 마치 ‘너 또 뭐 훔치러 왔냐?’고 말하는 듯했다.
피노키오를 한참 노려보던 영감은 문을 쾅 열고 나왔다.
손에는 물이 잔뜩 담긴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이 녀석아,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다가 그 나이에 거지가 되었냐? 넌 딱 봐도 사고뭉치야! 빵은 무슨, 이거나 먹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가운 물이 피노키오의 온몸에 쏟아졌다.
그것도 그냥 물이 아니라, 마치 걸레를 빨고 남은 듯한 시커먼 물이었다.
“으아아아아악!”
피노키오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추위 때문에 물은 옷에서 얼어붙기 시작했고, 걸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움직일수록 몸이 굳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페토 박사가 다리에 기름칠을 얼마나 잘했는지, 그 덕분에 삐걱거리지 않고 끝내 집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눈밭 위에서 로봇 아이스크림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피노키오는 이를 악물고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추위는 한결 가셨다.
물론 보일러는 꺼져 있었다. 아니, 그보다 어떻게 트는 줄을 몰랐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덕분에 공기는 냉장고 속 콜라처럼 싸늘했지만… 바깥보단 확실히 나았다.
그런데 문제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덜덜.
조금 뒤엔 덜덜덜.
그다음엔 덜덜덜덜.
지금은 덜덜덜덜덜.
연필을 쥐어도 손이 떨려 글자가 아닌 지진계 그래프가 그려졌다.
신기하게도 따뜻한 곳으로 오니까 더 추워지는 것 같았다.
배고픔? 놀랍게도 덜덜 떨다 보니 배고픔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나저나 이 추위를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피노키오는 제페토 박사가 소형 용광로에 불을 지피던 걸 생각해 냈다.
‘그래, 그건 나도 할 수 있어.’
피노키오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용광로에 숯을 퍼 넣고, 성냥을 긁고, 드라이기를 들고 바람을 살살 불어넣었다.
불은 점점 살아났고, 마침내 용광로가 “후욱~”하며 뜨거운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됐어!”
그는 의자를 끌고 와 용광로 앞에 털썩 앉았다.
얼굴에 온기가 닿자 마치 천국의 문턱에 선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는 진짜 역대급으로 힘들었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박살 낸 일부터 시작해서, 먹을 거 구하러 나갔다가 겪은 일들,
그중에서도 그에게 물을 뿌린 빵집 할아버지 이야기는 완전 하이라이트였다.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졌다.
‘빵집 할아버지… 반드시 고소… 아니, 골탕 먹일 방법을 생각해야 해…’
피노키오는 빵집 할아버지를 어떻게 골려줄까, 생각하다가 그만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뇌는 아직 잠 속에 있었지만, 창밖으로 환히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피노키오는 억지로 눈을 떴다. 솔직히 더 자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배에서 너무도 요란스럽게 난동을 부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꼬르륵, 꼬르륵…”
이건 배꼽이 항의하는 소리였다. 잠이고 뭐고, 위장이 난폭하게 시위를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무언가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노키오는 벌떡 정신이 들었다.
“설마… 도둑? 냉장고라도 털어가려는 건가? 어떡하지? 아빠도 없는데…”
그러나 그다음 들려온 목소리는 아주 낯익고, 너무 반가웠다.
“피노키오! 아빠다. 문 열어라.”
그 말에 피노키오의 눈이 반짝였다.
‘제페토 아빠…! 드디어! 저 목소리는 분명… 먹을 것을 잔뜩 들고 오는 아빠의 목소리야!’
온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벌떡 일어나서 문 앞으로 달려가려는 그 순간—
털썩.
피노키오는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응? 뭐지…?”
그제야 피노키오는 자기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입이 떡 벌어졌다.
발이… 발이… 용광로에 녹아 찌그러져 있었다.
‘뭐야 이거? 언제 이렇게 된 거지?’
기억을 되짚어 보니…
어젯밤, 추위에 떨며 용광로 앞에 앉았다가, 따뜻해서 그만 용광로 위에 발을 올렸고…
그 상태로 잠이 든 것이다.
피노키오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문밖에서 제페토 박사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야, 왜 우는 거니? 문을 먼저 열어라. 나도 얼어 죽겠다.”
“엉엉… 나도 문 열고 싶어요. 근데… 열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다리가 다 녹아서 꼼짝도 못 해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쾅!”
문이 박살 나며 제페토 박사가 들어왔다.
그는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몸은 세탁기에 들어간 것처럼 덜덜덜 떨고 있었다.
감옥에서 한숨도 못 잔 상태 그대로였다.
제페토 박사는 상황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잠깐 식식거렸으나,
피노키오의 녹아버린 다리를 보자 동정심이 들어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은 추위에 곱은 손가락을 녹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피노키오의 다리를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놈아… 발 녹여 먹는 건 또 처음 보네…”
그런데 피노키오의 시선은 딴 데 가 있었다.
아빠가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
거기서 구수하고 고소하고 미치게 따뜻한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건… 단팥빵이다. 아니면 크림빵? 둘 다면… 나는 오늘부터 아빠를 신으로 모시겠어.’
피노키오는 아직도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눈은 봉지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다리는 없어도 돼. 지금 나한텐 빵이 더 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