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 넘어간 제페토

by 이진무

이어서 등장한 두건과 마스크는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꿨다.

다리 하나가 없는 마스크는 목발을 짚고 있었고, 두건은 붕대로 눈을 감싼 채 마스크의 팔을 붙잡고 ‘비장하게’ 입장했다.


“어머나, 불쌍해라.”

“눈이랑 다리가 없다니…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같은데?”


사람들의 분위기가 슬슬 두건과 마스크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그때 두건이 목소리를 높였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저와 내 친구 마스크는 눈과 다리 하나를 잃고 서로 의지하며 세상을 떠도는 중입니다.

그런데 난데없는 신고를 당했습니다.

글쎄 나와 마스크가 사람을 죽이려 하고 사기를 쳤다는 겁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보다시피 저는 장님이고 내 친구 마스크는 다리가 하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인하고 사기를 치겠습니까?

우리는 잡초 뽑기도 힘듦니다.

판사님! 상황을 잘 살펴서 현명하게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동의 물결이… 살짝 흐르려던 순간, 피노키오가 벌떡 일어났다.

“저 두건의 품에 검은 복면이 있어요! 그게 증거예요! 그걸 얼굴에 쓰고 저를 나무에 매달았다고요!”


경찰이 마지못해 두건의 품을 뒤졌다.

그러자… 진짜 복면이 나왔다. 문제는 그 냄새. 한 마디로 ‘치명적’이었다.

경찰은 코를 막고 도망치려 했고, 판사도 복면을 한 번 집어 들다가 “으억!”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멀리 던졌다.


그러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너무 냄새가 심해서… 아무도 못 써. 복면이 아니라 생화학 무기야.

따라서 피노키오, 너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야.”


피노키오는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 돼요! 만약 제가 거짓말한 거면… 천벌을 받을 거예요!”


판사는 콧김을 훅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말 잘 들었고. 판결 내리겠다. 두건과 마스크는 무죄. 피노키오는 무고죄로 징역 6개월.”


피노키오 판사.jpeg


피노키오는 계속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으나, 판사는 절대로 자기 의견이 틀렸다는 걸 인정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 피노키오의 항변에 눈을 반짝이며, 고집스럽게 턱을 치켜들었고, 피노키오는 바로 감옥에 끌려갔다.


두건과 마스크는 법정을 나서며 킥킥 웃었다.

“야, 우리 연기력만 있으면 어디든 살아남겠는데?”

“인정. 우리 영화 한번 찍어볼까?”


닭 한 마리가 그들을 쳐다보더니, 외쳤다.
“꼬끼오오오—”

진짜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는 한 마디였다.



한편, 제페토 박사는 비둘기 드론의 연락을 받고 공주의 저택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비록 피노키오가 사고뭉치에다 속 썩이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제페토 박사에게 그는 여전히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목발을 짚고 걷느라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면…’하고 수없이 중얼거리며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공주의 저택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길을 안내하던 비둘기 드론이 말했다.

“여깁니다, 박사님. 잠시만요, 공주님께 연락드릴게요!”


비둘기 드론은 슈웅 소리를 내며 집 안으로 날아 들어가더니 곧장 소리쳤다.

“공주님! 제페토 박사님이 도착하셨어요!”


제페토 푸른머리 공주.jpeg


잠시 후, 하얀색 실크 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저는 하얀 별 공주예요!”


“반갑습니다, 공주님. 저는 제페토라고 합니다.”


공주는 박사를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박사님 혼자 오셨어요? 피노키오는요?”


제페토 박사는 순간 당황했다.

“피노키오라니요? 저, 그 아이를 만나러 온 건데요. 지금 막 도착했어요.”


공주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어머, 이상하네요. 피노키오가 박사님 마중 간다고 한참 전에 나갔거든요.

저는 두 분이 같이 오실 줄 알았죠.”


“그 아이는 못 봤는데요… 혹시 길이 엇갈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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