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와 암살자

by 이진무

두건이 지도 한 장을 주섬주섬 꺼내며 말했다.
“지도나 한번 펴보자. 어디로 튈지 정해보자.”


마스크는 한숨을 쉬며 눈알을 굴렸다.
“너 눈이 멀었잖아. 지도를 펴서 뭐 하게?”


“지명만 불러. 내가 선택할게.”


마스크는 결국 손전등을 꺼내 지도에 불을 비추며 투덜댔다.
“매번 자기가 다 결정하잖아. 나는 그냥 따라만 가는 NPC 같다니까.”


두건은 냉큼 말했다.
“동쪽. 해 뜨는 쪽으로 가자.”


마스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노노노. 남쪽으로 가야지. 내 다리가 아픈 거 몰라? 따뜻해야 안 쑤셔.”


두건의 눈썹이 치솟았다.
“무슨 소리. 동쪽으로 가야지. 동쪽 길이 평탄해서 내가 걷기가 편하다고.”


“네가 편하자고 동쪽으로 가자는 거야? 내 다리도 생각해 줘.”


“너를 업고 걷는 건 나잖아. 조금이라도 쉽게 걷게 해줘야지.”


“길을 안내하는 건 나지. 올바로 길을 안내하려면 다리가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내가 업는다고!”


“내가 안내한다고!!”


이렇게 동쪽이냐 남쪽이냐 하며 싸운 지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나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며 하늘에서 검은 실루엣이 “슝!” 하고 내려왔다.

검은 망토, 까만 마스크, 날개 같은 캐노피.

검은 별의 암살자가 돌아왔다.


두건 마스크 암살자.jpeg


“흐흐흐… 하마터면 낚일 뻔했네. 너희가 바로 두건과 마스크지?”

그는 캐노피를 딱 접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마스크는 재빨리 한쪽 얼굴을 비틀며 외쳤다.
“우리가요? 에이~ 우리가 어딜 봐서 두건과 마스크처럼 생겼어요?

수배 사진을 봐도 우리가 그런 비주얼은 아니잖아요~”


암살자는 손전등으로 둘의 얼굴에 불을 확 비췄다.
“시끄러워! 더 이상 허튼소리를 하면 이 자리에서 박살을 내 주겠어.”


두건과 마스크는 합죽이처럼 입을 꽉 다물었다.


암살자가 갑자기 빠르게 말했다.

“두건! 마스크!”


순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대답.

“네! 네!”


암살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거 봐. 맞잖아. 두건과 마스크.”


둘은 입을 앙다물고 속으로 욕을 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암살자는 말을 이었다.


“자, 잘 들어. 지금부터 아주 정확하고 빠르게 대답해.

조금 전 네놈들이 거짓말하는 바람에 멀리 돌아왔더니 아주 피곤하거든.

그래서 굉장히 화가나.

나를 한 번 더 화나게 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이해하지?”


“네에에에!!!”


“좋아. 그럼 묻겠다. 너희가 인공지능 훔치겠다고 빌린 돈, 어디 갔냐?”


두건이 슬쩍 눈치 보며 말했다.
“그거… 전액 작전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우주선 렌트비, 위치 추적 장비, 위장 옷값… 뭐 돈 들어갈 데가 많았습니다.”


“그래. 그럼, 인공지능은 어딨어?”


마스크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훔쳤는데… 마지막에 걸려서 도망치다가… 이 별에 추락했어요.”


암살자의 눈이 번쩍였다.
“그럼, 지금 갖고 있단 소리네? 어서 내놔!”


두건이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게… 진짜 안타깝게도 다른 누가 훔쳐 갔어요. 진짜입니다.”


“거짓말하지 마! 지금 안 내놓으면 너흰 그냥 죽은 목숨이야.”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 그런데 그때, 두건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 암살자랑 공주를 싸움 붙이면 되잖아. 둘 다 우리 원수인데, 누가 지든 상관없지.’


두건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 하얀 별 공주가 이 숲 끝에 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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