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눈(雪)으로 눈(眼) 호강하기
2020년의 화두는 단연 코로나 19였다.
코로나는 세상의 모든 풍경을 바꿔 놓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중지되었다.
이 정도야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결혼식도 다 미루고, 장례식 조문도 은행계좌로 조의금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신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거문오름 탐방도 내년 1월 3일까지 멈추었다.
그래서 안 가본 지가 1주일은 되는 듯 싶다.
그 한 해가 겨우 하루를 남기고 저물고 있다.
하루가 지나 새해가 되면 좀 나아질까?
불운이 어느 순간 닥치듯이, 희망도 그런 발걸음으로 찾아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 암시하듯 2020년 세밑에 하늘에서 푸짐한 선물 꾸러미가 내렸다.
어제부터 간간이 내리던 눈이 마당에 희끗희끗 쌓이더니 어제 밤새 창문이 으르렁거렸다.
‘오늘 밤 더 눈이 내리면 거문오름 분화구에는 장관을 이루겠구나!’
얼른 전화기를 들고 정** 선생님께 통화를 했다.
그는 나와 동갑내기이다. 그래서 서로 말을 놓기로 한 사이이다.
“내일 아침 거문오름에 눈 구경하러 가자! 사진도 찍고!”
싫다고 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좋아!”
그는 사진에 프로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회원전도 갖는다.
카톡을 열고 해설사 방에 소식을 알렸다.
‘내일 아침 11시에 거문오름 가서 눈 구경할 사람?’
몇몇 선생님들의 반응은 있었지만 시큰둥했다.
‘길이 얼어 운전이 어려울 텐데 어떻게 가요?’
‘버스 타고 가면 되죠’
그 후론 소식이 없다.
그런데 안전요원 하시는 한** 선생님이 직접 전화가 왔다.
“진짜 내일 올꺼 마씸?”
“갈려고”
“알았수다”
오름 관리상 안전요원은 두 분이 매일 근무를 한다.
아마 우리가 간다니까 반가운가 보다.
오늘(31일) 아침 10시 경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또 전화가 왔다.
“왐쑤강?”
“가는 중!”
남자들끼린 이렇게 대화가 단순하다.
사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고주알미주알 할 필요가 없다.
길가에는 운전을 포기하고 길 옆에 주차한 차량들이 간간 보인다.
아마 아침 일찍 나왔다가 빙판에 낭패를 본 분들이리라.
대로에는 눈이 얼추 녹았지만 길섶엔 발이 빠질 정도였다.
한 길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인도에는 눈이 발목이 빠질 만큼 쌓여 있었다.
그래서 위험하기는 하지만 차도로 내려와 옆으로 걸었다.
탐방이 중단되고, 빙판이 되어서 다니는 차량이 다행히 없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걸었다.
참 지금 풍경에 어울리는 곡이다.
가사 내용은 모르지만 세찬 바람에 휘날리는 눈보라에 춥고 배고픈 어느 예술가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탐방 안내소에 도착해 보니 미리 와 있던 정** 선생님이 반겨준다.
우린 거문오름 둘레로 걸어 두 번째 안전요원 근무처로 갔다.
돌담에 쌓인 소북이 쌓인 눈이 소담스럽기만 하다.
하늘에선 연신 눈이 쏟아진다.
동영상을 촬영했으나 너무 바람이 거세여 눈발이 찍힐지 모르겠다.
하이얀 눈길에는 안전요원 한 분이 걸었던 발자국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 발길을 따라 걷는데 잘못 디디면 눈 속에 발이 빠져 신발로 눈이 들어와 발이 차갑다.
아! 이래서 서산대사가 이렇게 읊었나 보다.
踏雪野中去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 어지럽게 걷지 말지어다.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에
遂作後人程 뒷사람이 따라 걸을 것이니.
어쩜 지금 이 순간을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물론 서산대사는 이런 상황을 표현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앞 선 사람이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부모가, 스승이, 선배가, 사회지도층이 어지럽게 걸으면 후인이 그를 본받아 어지럽게 걷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전요원 근무처에 가 보니 두 분이 와 계셨다.
한 분은 남아서 출입자 통제하기로 하고 셋이서 분화구로 들어갔다.
입구에 늘어선 삼나무에 줄기 한쪽에만 눈이 붙어 신비롭기만 하다.
이는 아마 바람이 거센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리라.
눈 세상에 사는 에스키모들은 여섯 난 별 모양, 바늘 모양, 기둥 모양, 장구 모양, 콩알 같이 둥근 모양, 불규칙한 입체모양 등, 모양에 따라 눈을 3,000여 가지로 구분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그들은 눈의 종류를 다음의 4가지로만 구분한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가나(gana)',
땅에 쌓인 눈 '아풋(aput)',
바람에 휘날리는 눈 '픽서폭(pigsirpog)',
바람에 날려 쌓인 눈 '지먹석(gimugsug)'.
‘아풋’과 ‘지먹석’은 이미 내린 눈이고,
‘가나’와 ‘픽서폭’은 지금 내리는 눈이다.
그러니 내리는 시차에 따라 구분할 따름이다.
이는 에스키모 언어인 교착어를 알지 못하는 데에서 생긴 오류라고 한다.
교착어를 영어 문화권인 굴절어로 이해하려고 한데서 온 오류인 것이다.
‘교착어’ 하면 반갑다.
바로 우리 말도 교착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몽고어, 만주어, 터키어, 한국어, 일본어, 에스키모어 등이 교착어에 해당한다.
교착어는 한 어간에 다양한 토씨가 붙어 그 역할을 달리한다.
‘나’라고 하는 어간에 붙일 수 있는 낱말이 몇 개나 될까?
내가
나는
나에게
나를
나처럼 ·········
이처럼 붙이기에 따라 엄청 많을 것이다.
이것을 한국어에는 ‘나’를 나타내는 말이 엄청 많다고 하면 되는가?
에스키모 인들이 눈을 4개로 구분한다면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주로 내리는 모습이나 양에 따라 함박눈, 싸락눈, 가루눈, 진눈깨비 등으로 나뉜다.
함박눈: 다수의 눈 결정이 서로 달라붙어서 눈송이.
싸락눈: 구름으로부터 떨어지는 백색의 불투명한 얼음 알갱이..
가루눈: 건조한 가루모양의 눈,
진눈깨비: 눈이 녹아서 비와 눈이 함께 내리는 것.
눈의 종류를 4개로 구별한 것은 같지만 오히려 모양에 따라 구분한 것은 에스키모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더 그렇다.
중국인들은 어떨까?
한자 雪은 雨(비 우)자와 彗(비 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彗자는 손에 빗자루를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쓸다’라는 뜻이 있다. 내린 눈을 빗자루로 쓰는 모습이다. 본래 彗자가 적용된 䨮(눈 설)자가 쓰여야 하지만 편의상 획을 줄여 ‘雪’로 쓰이고 있다.
중국인들은 눈을 겨우 빗자루로 쓸어 없애야만 하는 장애물로 생각했나 보다.
삭막하기 짝이 없다.
참고로 두 나라의 대표적 시인이 노래한 ‘눈’를 비교해 보자.
江雪...柳宗元(唐): 강위에 내리는 눈....유종원(당)
千山鳥飛絶 산에 산에 새 날지 않고
萬徑人踪滅 모든 길에 사람 발자취 끊겼는데
孤舟蓑笠翁 외로운 배 도롱이 삿갓 쓴 노인
獨釣寒江雪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혼자 낚시 드리우네
雪 / 金笠: 눈 / 김삿갓
天皇崩乎人皇崩 옥황상제가 죽었는가 나라님이 죽었는가
萬樹靑山皆被服 산과 나무 천하가 온통 하얀 상복을 입었구나.
明日若使陽來弔 내일 아침 햇님이 소식을 듣고 문상을 오면
家家簷前淚滴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을 흘리리라
비교 감상평은 읽는 분들의 몫이다.
조금 더 들어가니 숨골지대가 나온다.
보시다시피 이런 곳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돌 틈 사이로 8도의 수증기가 연중 올라오니 눈이 오는 즉시 다 녹아 버려 쌓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거문오름을 ‘신성한 오름’이라고 이름 붙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곳을 맨 처음 걷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가는 곳 마다 설국이다.
돌 위에, 나무 위에 쌓인 눈에 눈이 부시다.
우리가 밟은 길도 곧 내리는 눈으로 메워지고 있다.
숲 사이로 내리는 눈송이가 머리에 수북이 쌓이고 있다.
어렸을 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서 '이 눈이 하얀 쌀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에 빠진 적이 많았다.
이건 내 상상만이 아니었다.
손 위 누님이나, 친구들도 만나면 이게 눈이 아니라 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얘기들을 많이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보리밥만 먹다 하얀 쌀밥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하늘에서 하얀 쌀이 내려 쌓이면 부모님이 밭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에서 쌀을 내려 주지 않아도 원하는 대로 그 하얀 쌀을 맘껏 얻을 수 있다.
하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그 기적을 만들어 낸 셈이다.
기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허기진 옛날이 그리워지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우리의 내면에는 이런 풍요로도 채우지 못하는 또 다른 삶이 존재하는가 싶다.
오름 능선에선 거문오름 분화구에 사는 노루 일가족 몇 마리가 연신 컹컹거리고 있다.
이 녀석은 생긴 것과는 달리 목소리가 험악하다.
처음 듣는 사람은 들개인가? 늑대인가 두려워 하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이면 고지대에 있던 노루들이 먹이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오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집에 기르던 개를 풀어 노루 사냥을 하였다.
노루는 앞다리가 짧아 산등성이 위로 달릴 때는 사냥개도 쫒지 못할 정도로 빠르지만 아래로 달릴 때는 곤두박질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높은 데 올라 노루를 산 아래로 몬다고 했다.
그러나 노루를 잡았다는 소문을 들어도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워낙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나는 잡아 온 노루를 보는 것 조차 무서워 가 보질 못했었다.
지금 이들은 자기네 영역에 침입한 우리 셋이 몹시 불편해 저렇게 소리치나 보다.
걱정마시라.
이제 곧 나갈테니.
탐방을 마치고 나서 갈비집에서 넷이서 소주를 곁들여 고기를 뜯었다.
산행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이 글이 2020년 12월 31일에 내린 폭설에 대한 기록이 될 수 있을까?
계산은 정** 선생님이 부득부득 우겨서 자기가 했다.
밖에선 여전히 함박눈이 날리고 있고,
이렇게 2020년 12월 31일을 마감하게 되는구나!
후기: 눈은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쉬지 않고 내렸다.
기상청에서는 57년 만의 한파라고 한다.
그저께는 눈이 거의 무릎까지 쌓였으나 용감한(?) 탐방객들이 간혹 있어 분화구를 다녀오신 해설사님 들이 사진을 찍어 올려 주셨다.
여기에 사진을 올려두면 또 다른 기록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후기로 사진을 올린다.
2021년 1월 7일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