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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망 Jul 02. 2022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레인부츠에 판초에 우산을 쓰더라도

요 며칠 비가 모처럼 많이 오네요.

어제는 면운동화를 신고 갔다가, 아주 쫄딱 젖었죠.

실내로 들어오니 저벅저벅 제 발자국이 물로 남을 지경이었어요.

힘든 날씨라고 생각하면서 퇴근했어요.


오늘은 어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며,

레인부츠에 판초를 뒤집어 쓰고, 우산을 펼쳤습니다.

"나는 오늘 무적이다"라며,

찰방찰방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습니다. 

막, 버스에서 내린 이가 활짝 펼친 우산에서 날아온 빗방울들을 얼굴에 맞았어요.


비오는 날, 빗방울이 몸에 튀는게 좀 어떻다고.

이렇게 중무장을 했나 싶더라구요.


문득, 스무살 즈음 호주에 갔을 때가 생각이 났어요.

첫 해외 여행이어서 그 나라 날씨같은 걸 별로 고려하지 않고 짐을 쌌죠.

호주에는 아주 짧은 우기가 있다는데, 딱 맞추어 방문했었죠.

그런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우산이 필요없는 날씨더군요. 


현지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모두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고,

우산을 쓴 이들은 바람과 실갱이 하고 있었어요.

마침 제 우산은 뒤집어져서 살이 부러졌구요.


그렇게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비에 쫄딱 맞은 생쥐꼴을 하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언제 또 이런 날씨에 해외에 서있어보겠나 하며,

찰방찰방 뛰어다니다,

미친 듯이 웃고,

그런 얼굴들로 잔뜩 사진을 찍어왔어요.


오늘, 그 버스에서 내리던 이가 핀 우산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저를 스무살의 시드니로 데려다 두었습니다.


그 스무살의 저는,

비오는 날 개울가에서 개구리를 잡겠다고 버둥거리는 

열살의 저를 기억했던 것도 생각이 나네요.


그래서, 오랜만에

비가 힘들지 않았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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