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알려진 명문고를 가면
소의 꼬리가 되어 내신을 못받을까봐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원도 해보지 않은 체로.
그래도 닭의 머리로 내신을 잘 받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작은 마음으로 저울질 했다.
설령 꼬리였더라도
그 무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달리 있었을텐데..
그리고 지레짐작으로 내가 선두에 설 수 없다고 포기해버렸다.
그런 마음이었으니,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었지 않았나 싶다.
그런 아이는 3년 뒤에 고3이 되어
수시를 준비하다가
수능을 깔끔히 말아먹고 등급 컷에 걸려
붙어둔 수시도 떨어졌다.
재수를 할까를 고민하다
다시 또 벌어지지 않을 일들
가진 점수보다 더 떨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하다가
적당히 현실에 타협했다.
그 해 나온 점수에 맞추어 대학에 가는 선택 말이다.
그런 패배의 마음은
내 선택의 순간들에 불쑥 불쑥 찾아온다.
졸업을 한 뒤에
여러 회사 중에 가고 싶은 기업에서 가장 늦게 공고가 떴다.
그 전에 뜬 공고들에 지원했었는데,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을 때까지도
가고 싶은 회사 공고는 뜨지 않았다.
내 생각에
내 실력이 충분해서 그 회사도, 원하는 회사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입사했다가 곧 이직하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만한 일이 아닌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것이 업계에서 내 평판을 저울질 하는 수단이 될 것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 회사를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가
붙길 마라며 면접은 가지 않은 채
가고 싶은 지금의 회사가 공고 띄우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원하는 회사로 입사는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의 내 고민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에도
나의 성찰에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서 벌어질 일은 신이 아니니 당연히 알 수 없다.
결정했으면 받아들이고 나아가
닥치는 일들에 맞닥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