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망 May 20. 2022

지금이 있기까지의 선택(2)

어쩌면 실패했던. 자발적이지도 않았던.

학생회까지 병행하면서 대학과 대학원 수업을 동시에 수강하는 생활을 하는 통에 

잠은 2시간 3시간정도 잤던 것 같아요.

물론 연구논문도 쓰면서요.

그러다보니, 선배들에게 열심히 하는 후배라는 인식이 박혔던 것 같네요


원래, 공학은 이학에 비해 취업이 조금 더 용이하죠.

상대적으로 취업할 시기쯤 되니, 

국제적으로도, 한국 내에서도 취업시장이 점차적으로 닫히고 있었어요.

제 전공분야로는 그 해 정규직원 신규채용이 한군데도 없을 지경이었죠.

제가 대학을 전공할 때만해도 그 해 졸업생은 대부분 취업이 되었던 것과 굉장히 상반되었죠.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선배가 전화를 했죠.

"내가 다니는 회사에 비정규직 자리가 하나 있다. 

오면 연구개발도 할거니까, 연구실적을 쌓는데 도움이 될거다.

하지만 아직 회사 분위기가 경직되있어서, 오면 커피를 타는 허드렛일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생각이 있으면 지원해보겠냐?"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학교의 고인물에서 머물러있고 싶지 않았어요.

커피타는 일이 성차별에 해당하는 내용이더라도, 최소한 막내라서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래서 그 회사에 지원했고, 운이 좋아 전공분야와 일치하는 부서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비정규직이지만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학교의 선배들이 졸업 축하을 겸해서 술을 사주는 자리에서 해준 얘기가 있었어요.

"나보고 꼰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안하고는 네 선택이야.

  아마도, 너에게 복사를 해가지고 오라는 상사를 만날 수도 있고,

  인쇄를 해달라는 동료를 만날 수도 있어.

  그런데, 상대가 스캔이 필요한건지 한번 더 들여다 본다면, 네 사회생활이 조금 더 편할 수 있어.

  이건 예시고, 일을 시키는 상사가 시키는 일에 숨겨진 뜻이 없는지 한번 더 살펴보라는 뜻이야."


그 조언에는 별 생각 없이 입사했습니다만,

실제로 상사가 복사를 시킨 일을 맞닥드리자, 이건 나중에 스캔본을 찾으시겠다 싶어 

스캔해두었다가 메일로 넣어드렸죠.

그분이 제가 내는 성과를 눈여겨 본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이 분은 여러 방면으로 제 평판을 높게 사고, 추천해주셨어요.


그러던 중에, 저는 정규직 전환이 담보되는 다른 회사를 지원했습니다.

그 때 아이디와 비번이 자동저장되는 기능을 쓰고 있었는데,

이름란에 주민등록번호가 저장되는 대참사를 인지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떨어졌죠.


이런 멍청이가 있나 하고 낙담하던 차에 지금의 회사에서 채용공고가 났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고 있었던 상사분과 연구실적도 많이 내고, 널리 제 평판을 높여주신덕에,

다른 회사에서도 연락을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주민등록번호가 이름에 저장되었던 그 회사는

원래 위치했던 지역에서 저 멀리로 본사를 이동했죠.

본가에서 멀어서 취업하고 싶지 않았던 지역으로요.

덕분에 저는 원하던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잇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있기까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제 객관적인 스펙도 있겠지만,

제가 다른 길에서 떨어지고, 고꾸라지면서 돌아오느라,

이 길까지 당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실패하고 있다면,

그 늪을 떠나, 콘크리트 길을, 아니면 꽃길을 가기 위한

 찰나의 순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저는 요즘 인생사 새옹지마를 많이 떠올립니다.

지금의 실패가 전투에서 지는거지

전쟁에서 지는 건 아니라고 되뇌이고 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이 있기까지의 선택(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