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의 시작
낮엔 잘 안 나가
커튼은 늘 닫혀 있고, 햇살은 내게 쓸모가 없다.
사람들이 퇴근 준비를 할 때, 나는 화장을 시작한다.
화장은 진해야 한다. 표정은 부드러워야 한다.
향수는 익숙한 걸로.
그리고 마음엔 단단한 껍데기를 바른다.
이곳은 ‘가라오케’다.
술이 있고, 노래가 있고, 남자가 있다.
그리고 여자들이 있다.
우리 같은 여자들.
사람들은 우리를 '노래방 아가씨'라 부른다.
정확한 말은 아니다.
그 말에는 너무 많은 오해와 너무 적은 이해가 담겨 있다.
여기엔 별의별 남자가 다 온다
손이 먼저인 남자.
말은 예쁘게 시작한다.
“아가씨는 왜 이렇게 예뻐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무릎 위로 손이 올라온다.
내가 손을 슬쩍 치우면,
“왜 그래~ 여기선 다들 그러잖아.”
그들은 ‘여기’라는 공간이 무슨 면죄부라도 되는 줄 안다.
욕하는 남자도 있다.
처음부터 반말.
“아가씨, 이런 거 말고 다른 일 하지 그래.”
“얼굴은 괜찮은데, 왜 이런 데서 일하냐?”
그 사람들 눈엔 우리가 다 ‘버려진 여자’처럼 보이나 보다.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웃는다.
웃는 게 싸우는 것보다 덜 피곤하니까.
가끔은 손찌검을 하려는 놈도 있다.
기분 나쁘다고, 술 깨면 기억 안 난다고
그런 핑계로 손이 올라간다.
그럴 땐 내가 얼마나 빠른지,
이 일은 나한테 몸으로 먼저 가르쳐줬다.
그리고 돈이면 다 된다고 믿는 사람들
지갑 꺼내면서 말한다.
“내가 오늘 이 방에 백은 쓴다.”
“네가 내 기분만 잘 맞춰주면, 몇십은 그냥 간다.”
돈이 들어오면 분위기도 달라지고,
눈빛도 달라지고, 말도 바뀐다.
돈을 지갑에서 꺼내면서, 인간다움도 같이 빼내는 사람들.
난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마.
돈은 나를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을 사는 거야.
착한 사람도 있어.
쭈뼛쭈뼛 들어와, 말 한 마디 조심스레 꺼낸다.
“죄송해요, 제가 이런 데는 처음이라서...”
그런 사람에겐 나도 괜히 부드러워진다.
진짜 숙맥 같은 사람도 있다.
눈도 못 마주치고,
잔 부딪히다 손끝 스치면 귀까지 빨개진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내가 위로해준다.
“괜찮아요, 그냥 노래 부르고 술 마시면 돼요.”
이상하게,
그런 순한 사람들과 있는 시간이 더 빨리 간다.
이 일은 가끔 나를 무디게 만들고,
가끔 더 예민하게 만든다.
누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관심인지, 욕망인지, 경멸인지
이젠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
가끔은 내가 기계처럼 느껴지고,
가끔은 내가 배우처럼 느껴진다.
이 일은 진심이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가짜 감정은 금방 들통난다.
그런데, 이 일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 오는 여자들도 참 다양하다.
누구는 집안 빚 갚으려고,
누구는 학자금 대출 때문에,
누구는 애를 혼자 키우느라,
정말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근데, 정말 놀고 싶어서 오는 애들도 있다.
돈 잘 벌리고, 예쁜 옷 입고,
술 마시며 인기 있는 게 재밌어서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는 얼굴.
이 일이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도,
몸이 얼마나 피로해지는지도
아직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땐 속이 쓰리다.
이 일은 놀이터가 아닌데.
누군가에겐 생존이고,
누군가에겐 마지막 버팀목인데
가볍게 웃고 넘기는 그 말투가
이 공간을 더 무겁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여기 있다
사람들은 우리를 쉽게 말하고 묻는다.
“부끄럽지 않아?”
“다른 일 해볼 생각 없어?”
나는 웃는다.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도망치듯 부정하고 싶진 않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내 삶을 버티고 있다.
해가 뜨면 퇴근길.
햇살은 눈부시고,
밤새 덧입힌 화장은 조금씩 무너진다.
그제야 나는 다시
내 얼굴, 내 이름, 내 방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또 하루를,
아니, 또 한 밤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