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탓하지 않기로 했다.
살면서 나는 사람들의 말을 유심히 듣고,
그 말에 어떻게 답할지를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들어줄 때,
직장에서 직원들과 대화할 때,
뉴스나 예능, OTT 드라마를 볼 때조차도
등장인물의 성격, 말투, 숨은 심리를 읽어내려 애쓴다.
내가 그런 습관을 갖게 된 데에는 아마,
“탓”이라는 감정을 자주 마주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항상 사람에게 귀속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일이 꼬일 때마다
어김없이 책임을 뒤집어쓸 사람이 필요해진다.
정작 원인은 시스템에 있는데,
결과는 가장 눈에 띄는 누군가에게 쏟아진다.
그게 나일 때도 있었고,
가만히 있던 동료일 때도 있었다.
“이거 누가 처리했어요?”
“그건 ○○님이 진행한 걸로 아는데요…”
“왜 이런 식으로 했어요?”
“지시받은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사람 하나가 실망당하고, 낙인찍힌다.
그래서 나는 '탓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자연스럽게
“내가 좀 참자”, “이번엔 그냥 넘기자”
라는 내적 타협이 생긴다.
그게 참을성인지, 회피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호의는 권리가 되고, 배려는 당연함이 되었고,
나는 말 없이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 그들이 바뀌겠지.”
라는 희미한 희망 하나로.
그래도 계속했다.
내가 아닌 그들이 바뀔 거라는 믿음으로.
불만은 삼켰고, 묵묵히 내 할 일을 해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올라가겠다.”
그럼에도, 때론 분노가 넘쳤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다.
정말 다 던져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그럴 때면
나는 밖으로 나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나도 탓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
그들 나름대로는
배려하고 있다고 믿는다.
양보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움을 주면 보상을 기대하고,
한 번 양보했으면 다음은 자신의 차례라고 믿는다.
그들은 평생을
그게 정답인 양 살아왔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세계 속에서만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들이 보는 하늘이 되고 싶다
나는 그 우물에서 뛰어올라,
더 넓은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가는 방향은 그들과 다를지 몰라도,
그 위에서 빛나는 누군가가 되고 싶다.
탓은 늘 남에게 쏟아지지만,
변화는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의 방향을 정하고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