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한 비극이 일어났다. 컴퓨터에 파란 화면이 찾아와 버린 것이었다. 재부팅 해도 컴퓨터는 자연 풍경의 바탕화면을 보여주지 않고 온통 파란 나라를 보여줬다. 글 쓰는 것, 예능, 드라마 영상을 보는 용도가 대부분이었던 요즘 이런 갑작스러운 만남은 내게 당혹감을 안겼다. 아무리 해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포맷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포맷은 내게 말끔해진 컴퓨터 상태와 용량을 선물로 주었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지 않은 선물이었다. C 드라이브의 내용이 모조리 사라지면서 바탕화면에 저장해놓았던 내 글들과 사진들이 함께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참담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포맷하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며 찾아봤지만, 지식인과 여러 블로그에 올라온 방법은 내 컴퓨터에서는 소용없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다른 곳에 저장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살려야 한다. 나도 방에 문구를 붙여놓고 용을 써볼까.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이래서 전쟁 중에 유물과 기록들이 소실되어버리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인가. 사진의 주된 내용은 내 2000년과 2010년 중반의 기억들이었다. 글은 지금까지 써왔던 글과 기획안, 브런치에 올리려 했던 것들이었다. 사진들은 미니홈피를 백업해놓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싸이월드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더는 백업할 수 없게 되었다. 글은 다시 써도 된다지만 뭘 쓰려고 했는지 수많은 글을 다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력이 살아있더라도 단어와 문장, 글의 구조를 온전히 똑같게 할 수는 없다. 그때 그 감정과 글의 맛을 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찾을 수 없는 나의 기록이 사라지는 게 너무나 싫다. 찾는다고 해도 그때 그 기억이 1이라도 틀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재산의 절반 이상을 날려 버린 기분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쉽게 할 수 있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재기를 다짐했다. 새로 시작 안 한다면 원점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여기저기 뒤져보니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저장된 글이 꽤 있었다. 그래도 가슴이 쓰라리다.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글을 쓰려 한다.
백업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나는 다른 하드디스크에 글을 수시로 옮기고 있다. 이게 귀찮아져서 안 하게 되고 또 타성에 젖어 이번 최악의 사태를 또다시 겪을까 봐 걱정이다. 그럴 때마다 허벅지 한 번씩 세게 꼬집고 백업하는 습관을 기르려 한다.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자료들은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