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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31. 2020

인생의 주제가

2014년의 기억

좋은 음악은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대중의 귀와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특히 가수 故 김광석 씨의 노래는 친근감이 넘치는 훌륭한 음악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활동한 분이라 그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그의 노래가 더욱 정이 갔다. 그가 남긴 음악들은 내 인생의 주제가처럼 따라다녔다. 입대 전날까지 괜히 생기는 불안감에 나 스스로 위로하겠다고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고 첫사랑의 실패는 ‘사랑했지만’을 부르며 달랬다. 시간이 지나고 슈퍼스타 K4에서 ‘먼지가 되어’가 인기를 끌자 사람들이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회자하는 모습이 정말 반가웠다.


어느 날, 나는 노량진역 출구에서 친구를 만났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를 보았다. 오랜만에 한번 만나자는 이야기를 나눈 후의 만나서 그런지 잠깐 어색함이 있었지만, 서로를 보며 새어 나온 미소와 함께 눈 녹듯 사라졌다. 친구는 노량진역 앞에 있는 길거리 음식을 소개했다. 다양한 먹을거리가 즐비했다. 값싸고 넉넉한 양의 음식을 젊은이들이 포장마차 곳곳에서 먹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의자도 없이 서서 일회용 용기와 수저로 길거리에 서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내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일까. 여유 있게 먹는 모습보다 공부에 지치고 허기져서 허겁지겁 먹는 모습, 다음 공부를 위해 시간을 아껴야 한다며 재빨리 먹는 모습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친구도 자리를 잡고 컵밥을 먹는데 친구가 말을 꺼냈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가 아빠한테 손자 다른 일 말고 그냥 공무원시험이나 보게 하라고 했었대. 그때 아빠가 화내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지금은 우리 아빠가 나한테 공무원시험 한 번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나는 그에게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았다. 당시에는 미래에 관한 주제는 말하지 않아야 할 교우 간 규칙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판 승부 같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미래의 불안함과 하루하루 싸우는 우리끼리 마음의 부담을 한 층 더 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파심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서로의 꿈을 나누고 격려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이른 아침에 노량진을 간 적이 있다. 노량진에서 9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우르르 내리는 칸을 나는 ‘노량진 칸’이라 불렀다. 아침에 용산 급행 전철이 서는 역마다 이 칸에 타는 많은 사람이 피곤한 모습으로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탑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곤함에 지쳐 졸며 가는 사람. 가는 동안 시간도 아깝다는 듯 두꺼운 책을 읽으며 가는 사람. 딱 보면 ‘노량진에 가는구나.’라고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더욱더 조용히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노량진역에 거의 도달하니 칸에 있는 사람들이 문 앞에 서서 하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경주의 시작을 기다리는 단거리 육상선수 같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거나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었다.


노량진의 식당에서 많은 젊은이가 홀로 앉아 고개 숙이고 밥을 먹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청춘의 시기를 즐기기보다 스펙에 매달리고 온 힘을 다해도 평생직장 하나 구하기 힘든 것이. 대학학위를 따고 남는 건 학자금 대출 빚이라는 것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 싶었다. 그들은 충분히 열심히 했고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단지 아파도 참으라는 위로와 격려는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이 충분히 하고 있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나는 내 미래에 대해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에게 나는 꿈을 추구하고, 꿈을 좇으며 살아가고 꿈을 누리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나의 꿈을 위해 그려놓은 청사진은 아무 오차 없이 잘 이루어질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되길 바랐다. 사람들은 그 청사진이 무너졌을 때 찾아올 충격이 클 거라고 예언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들이 옳다는 생각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해놓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 내가 바랐던 결과들이 일어나지 않을 때 불안과 슬픔은 더욱 나를 괴롭혔다. 어느 날 TV에서 “꿈이 없어도 되지만 꾸면 해야 한다. 꿈은 이뤄져야만 한다. 꿈은 무조건 이룬 다음에 버려야 한다. 그걸 실현한 다음에만 버릴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한때 나도 꿈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이가 왜 꿈을 이루지 못 했느냐고 물으면 뭐라 답할 것이냐.”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내 꿈을 이루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나와 조금씩 꿈이 아닌 다른 곳, 다른 방향에 눈을 돌리는 나를 발견했다. 슬픈 일이다. 반갑지 않고 달갑지 않은 생각이 머리를 괴롭힌다. 지금 내 인생의 주제가는 ‘이등병의 편지’가 아니다. ‘사랑했지만’을 부를 여유도 없다. 이제 다른 노래가 내 인생의 주제가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래를 더 온전히 이해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아니, 이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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