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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Dec 26. 2020

승민아 너는 용감했다

진짜 찐따의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은 “이젠”으로 시작하는 김동률의 저음이 들리면 떠오르고 영화를 생각하면 자동으로 노래가 들리는 영화다. 이 영화를 떠올리면 꼬리를 물 듯 떠오르는 것이 내 대학생 시절 들었던 교양 수업이다. 


건축학개론


나는 아웃사이더. 찌질. 찐따. 이런 단어와 어울리는 대학 생활을 했다. (요새 잘 나간다는 사람들이 이 영역에도 접근하고 있어 진짜들이 걱정하고 아쉬워한다는데 나도 그중 하나다) 소심한 성격은 좁은 동네 생활에서 갑자기 커진 세상으로 나가게 되니 더 나를 위축되게 했다. 누구는 여러 번 했을 캠퍼스의 로맨스도 꿈꾸지 못했다. 새로운 학문의 길에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앞서가는 남의 뒤를 좇는데 정신없었고 늘 집에 가는 길이 멀어 수업이 늦게 끝나면 언제 집에 가나 걱정만 했다.



누가 봐도 정말 재미없는 대학 생활이었지만 마지막 학기에 정말 독특한 교양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결혼, 연애’와 관련된 수업이었다. 가상 연애를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하는 수업이었는데 타 대학에서 인기가 많아 내가 다니던 학교로 교수님을 모신 수업이었다. 마지막 학기라도 재미있게 보내자는 마음으로 임한 수강 신청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했다. 어떻게 해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랑 같은 생각의 남학우들이 많았는지 강의실은 남초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도 여학생이 몇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무용학과 여학생이었다. 우아하게 느껴지는 외모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당연히 남학생의 인기가 많았고 사랑의 작대기 시스템으로 커플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그녀가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짝이 될 수 없었다. 당연히 내가 그녀와 마주 볼 기회는 없었다. 




건축학과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수지)에게 반한다. 함께 과제를 하고 조금씩 친해지지만, 승민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둘 사이에 선배 재욱(유연석)이 나타나고 재욱의 견제에도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승민은 서연과 재욱이 함께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놓아버리게 된다. 


서연을 향한 승민의 매몰찬 행동을 찌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같은 찌질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승민을 옹호하고 싶어진다. 표현이 서툴렀지만 승민은 그 말을 한 것이 용기 있는 것이었다. 찌질이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나라면 어서 옵쇼 했겠지만. (수지가 찾아주는데).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더 용기를 냈다면 좋았겠지만 모든 일에는 선택이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더 심각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세월은 종강을 향해 달려갔다. 강의를 마무리하는 뒤풀이 자리에서 다른 학과 여학생들이 내게 짓궂은 질문을 했다. 누가 이상형에 가까운지 순위를 매겨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교수님께 이것저것 질문하곤 했다. 그래서 여러 와전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내게 질문한 여학생에게 내가 관심 있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내게 확인차 간접적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눈치 없는 나는 그 기대를 저버렸다.

“나는 무용학과 여학생이 1순위고 나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리고 막차를 타야 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로 나는 술집에서 나왔다. 차라리 집에 안 가고 몇 마디 더 얘기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애초에 관심이라도 표현했더라면 후회는 없었을 텐데. 내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서연과 멀어진 승민(엄태웅)은 건축가가 되어 서연(한가인)과 다시 만나게 된다. 처음에 승민은 오랜만에 만난 서연을 몰랐던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거리를 두지만, 서연은 적극적이다. 서연은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한다.


첫사랑은 그냥 추억으로 묻어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인가. 집을 만드는 동안 승민과 서연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흐른다. 



영화를 보며 그때 겨울 나의 어설픈 건축학개론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내 이야기에는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승민과 나의 외모 차이. 눈물 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차이점이다.



내가 그 여학생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만나기 싫은 얼굴은 다시 만나도 만나고 싶은 얼굴은 도무지 만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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