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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an 14. 2021

아버지의 SNS 체험기

퍼거슨 감독님 이런 경우는 인생의 낭비 아니죠?

내 첫 SNS는 ‘버디버디’였던 것 같다. 버디버디는 그냥 메신저였지만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유행하면서 홈피 기능을 추가했다. 나는 버디버디 홈피를 사용하다 싸이월드로 넘어간 것 같다. 지금만큼 고화질의 사진, 버퍼링 없는 동영상이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사진을 올리며 내 삶을 공유했다. 


내 집 꾸미기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남의 집 구경이었다. 사진 몇 장 보고 그 사람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언제 뭘 했는지를 보며 기호나 성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댓글을 적으며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SNS는 시간이 지나며 지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으로 발전했다. 그런 SNS를 활용한 재미있는 영화가 2018년에 개봉했다. <서치>는 한 아버지가 사라진 딸의 행방을 딸의 SNS 활동을 추적해 쫓는 영화다.


서치


데이빗(존 조)는 딸 마고(미셸 라)가 며칠째 연락 없는 딸이 실종됐음을 알게 된다. 경찰의 조사에도 좀처럼 단서가 나오지 않고 데이빗은 딸의 노트북의 SNS를 통해 딸의 행적을 좇는다. 데이빗은 SNS 속 애매한 조각들로 확실하지 않은 추리를 하며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영화는 빤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상상을 자극해 영화를 단순하지 않게 만든다. 다양한 화면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배우를 찍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웹캠, CCTV, 화상통화 등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해 보는 이가 데이빗이 되어 함께 화면을 보며 SNS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데이빗은 마고의 맥북으로 여러 SNS를 접하게 된다. ‘페이스북’에서 딸의 친구 목록을 살피고 ‘텀블러’에서 딸의 사진과 글을 읽고 스트리밍 사이트 ‘유캐스트’로 방송 활동을 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했음을 알게 된다. 딸의 삶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데이빗은 실제로는 딸을 잘 몰랐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어느 시대든 소통이 부족하면 일이 나기 마련이다. 마고는 아버지와 부족했던 소통을 익명의 사람들과 해소했다. 익명성은 자유를 주지만 그 자유가 폭력을 만들기도 한다. 악성 댓글, 잘못된 정보, 그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겪는 일들이 아닌가. 딸도 그런 일들을 겪는다. <서치>는 지금 시대 소통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보여준 영화였다.



“SNS는 인생의 낭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남긴 말이다. SNS를 통해 누군가의 흑역사가 쌓여갈 때마다 이 말이 명언으로써 조명되고 퍼거슨 경이 또 1승을 추가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내 삶을 공유하는 SNS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만일 아버지가 SNS를 했다면 딸과 더 가까워졌을까? (적어도 딸의 행방을 더 빨리 찾았을지 모른다) 답을 찾기가 여전히 어렵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리고 그 기술을 보며 와 소리가 절로 나올 때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앞으로 기술은 더 발전할 텐데 내가 이를 온전히 습득할 수 있을까. 다음 세대들과 나는 잘 소통할 수 있을까. 나는 얼리어답터도 아니고 기술을 익히는데 빠른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익히는 일에 겁부터 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일어나는 일이 실제로 생기면 안 되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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