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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Apr 12. 2021

철도 인턴에 도전하다

노동요 - 철도 인생



백수에게 엄마가

2016년.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산 지 1년째. 엄마의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취업사이트를 뒤적였다. 돈을 안 벌 생각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회사에서 돈 벌 기회를 안 줬을 뿐이지. 회사는 간절한 내 구애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마 내가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겁한 변명일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취직은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었기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일하면서 이직을 준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더 승산이 없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점점 꿈과 멀어질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취직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내가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엄마의 그 말이 강요나 질책이 아닌 간절한 부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청년 취업이 어렵다는 이때 스펙도 변변찮은 내가 수많은 미지의 사람들과 경쟁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래도 남들도 다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 말로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여기저기 채용공고를 찾아보며 내가 당장 접수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봤다. 지금까지 내게 취직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경험 같은 관련 이야기조차도. 결과가 좋으면 자랑이 되고 좋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결국 서로에게 불편한 주제여서 그랬던 걸까. 아무튼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내가 직접 공고를 찾아야 했고 전형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붙든 떨어지든 내가 직접 경험해야 했다. 그렇게 다치고 상처가 아물면 새사람이 되는 것이 취준생의 길인 것 같았다.  


마침 눈에 들어왔던 것은 한국철도공사의 공고였다.



사람․세상․미래와 함께하는 국민 행복 코레일에서 정규직 채용을 위한 인턴사원 선발을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항상 타고 다녔던 전철이기에 익숙하지만 내가 일할 곳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곳. 매년 연례 행사하듯 파업하고, 열차가 고장 나서 지연되고, 별의별 사람을 만나 고생하는 곳. 이런 인식이 내 안에 있었는지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가족을 위해 꾹 참고 일하는 가장의 심정이 이런 건 아닐까 생각하며 공고를 자세히 읽었다.


한 번도 제대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인턴이라는 제도에 대해 그냥 안 좋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벼랑 끝 존재.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는 않고 잔뜩 부리다가 쫓겨나는 이야기를 언론과 각종 방송에서 봤기에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지. 이런 제도는 왜 있는 것인지 생각했다.


사무영업, 물류영업, 운전, 차량, 토목, 건축, 전기, 통신 등 직종은 많은데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사무영업과 물류영업인 것 같았다. 물류영업의 물류 일은 알지도 못하기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무영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근무 기간은 3월 28일부터 6월 17일 약 3개월. 정규직이 되지 않더라도 그동안 돈을 벌면 조금 집안 살림에 기여는 되지 않을까. 김칫국 마시지 말고 인턴부터 합격하자는 생각으로 자기소개서를 썼다.


인턴이 되는 길은 멀고 험했다. 먼저 서류전형에서 합격하고 필기시험을 본 뒤 체력검증을 통과하고, 면접을 보고, 철도적성검사까지 치러야 한다. 게임으로 치면 5 스테이지를 넘어야 중간 단계인 인턴 기간을 거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서류 전형에서 붙어본 적 보다 떨어진 적이 많기에 제발 필기만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물론 이런 생각은 단계가 거듭될수록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취준생의 마음이다.


자기소개서는 6개 문항에 맞춰 써야 했다.



1. 최근 한국철도공사의 주요 이슈에 대해 한 가지(선택)를 언급하고, 그것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기술하십시오.

2. 우리 공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본인이 평소 한국철도공사에 대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사항을 기술하여 주십시오.

3. 본인이 지원한 직렬의 주요 업무를 간략히 기술하고, 그에 따른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받은 교육(전공 포함), 경험‧경력을 기술하십시오.  

4. 현재 자신의 위치에 오기 위해 수행해온 노력과 지원한 직렬에서 성공을 위한 노력과 계획을 기술해 주십시오.

5. 예상치 못했던 문제로 인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끝까지 업무를 수행해내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경험이 있으면 기술해 주십시오.

6. 본인의 입사 후 포부에 대해 기술하십시오.



회사에 대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포부 등 일반적으로 나올 수 있는 문항들을 포괄적으로 골라 물었다. 제한 글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아 오히려 줄이는 게 힘들었다. 자소설이라고 할 정도의 내 인생의 각색은 없었다. 매력적으로 쓰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날. 다행히 합격해 필기시험을 보러 오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필기시험 – 낡은 정보도 정보다

각종 취업 사이트와 카페, 블로그 후기를 보며 시험을 준비했다. 책을 보면서 공부하되 회사 홈페이지에서 회사와 관련된 정보를 숙지하라는 글이 보여 그대로 따랐다. 서점에서 파는 철도공사 기출문제를 풀었다. 빠르게 많이 풀어야 하는 게 중요하기에 기출문제가 그대로 시험에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적성검사, NCS 등 다른 회사 시험을 공부했기에 기출문제가 어렵지 않았다. 실전에서 잘 할 수 있는지는 확신이 없었지만. 


필기시험장은 잠실 근처 어느 학교였다. 시험 전날까지 나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그냥 시간 낭비는 아닌 건지 의문이 들었다. 가는 동안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시험장에 갔다. 오후에 시험이라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는 너무 일러 시험장 근처에서 끼니를 때우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휴대전화를 뒤적였다. 만만한 것은 패스트푸드. 근처에는 패스트푸드점이 없어 든든히 먹고 운동하듯 걸어가자는 생각으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을 찾았다. 천천히 먹자는 다짐과 다르게 나는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먹었다. 나처럼 시험 보러 온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지. 창피한 일도 아닌데 괜히 기죽어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학교에서 친하게 지낸 친구가 이 근처에서 산다고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의 모습에서 나름 유복하게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다. 이 동네에 오고 나서 그 추측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내가 사는 곳과 이곳의 건축물은 구조와 배치가 달랐다. 내가 사는 곳은 주상복합단지도 없고 으리으리한 디자인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왠지 공기도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찬바람이 더 쌩하고 부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시험장에 도착해 내 자리를 찾아 마음을 다잡으며 기다렸다. 학교 안의 반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누군지도 모르지만 건투를 빌었다. 배경을 다 알 수 없지만 모두 취업을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아닌가. 내 처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괜히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두 명의 감독관이 시험장에 들어와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시험이 시작됐다. 먼저 적성검사를 시작했다. 솔직하게 답하라는 말을 들었다. 같은 질문이 곳곳에 있었다. 더 좋은 사람인 척 거짓으로 답을 낼 수도 있지만, 문항이 너무 많아 같은 문항도 다르게 답할 위험이 있었다. 일관성이 떨어지면 오히려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내가 생각하는 대로 OMR 카드에 답을 칠했다. 부담 없는 검사인데 제한 시간이 있어 문항에 다 답을 못할 것 같아 허겁지겁 풀었다. 풀어도 줄지 않는 문제에 진이 빠졌다. 진짜 필기시험은 적성검사 후에 있었다. 차라리 필기시험을 먼저 보고 마음 편하게 적성 검사를 보는 게 낫지 않나 속으로 불평했다. 집중하느라 이미 힘이 다 빠져 시험을 잘 볼 자신이 없었다. 시험은 영역별로 제한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이 지나면 내가 문제를 다 풀지 못하더라도 다음 영역으로 넘어가라고 했다. 문제지 파본 검사를 하면서 다 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너무 시간이 짧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갔다. 기출 문제와 유형이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아닌 것도 있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았고 어떤 영역은 문제를 5개 이상 남기기도 했다. 이전 영역은 풀지 말라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다가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한 영역에 주어진 시간이 남았을 때는 그 전 문제를 감독관의 눈을 피해 슬쩍 보며 풀었다. 시험 전에 미리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여러 정보를 살펴봐서 그런지 관련 문제가 나와도 쉽게 풀 수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현대 전투는 정보가 필수다.


시험을 마치고 학교를 나오니 중천에 있던 해는 점점 떨어지며 잠들 준비를 했고 붉은 노을이 비치고 있었다. 언제 다시 집에 가냐는 생각과 결과가 잘 나오길 바라는 생각을 안고 집에 돌아갔다. 2월이 끝나고 봄이 온다지만 아직 내가 겪는 계절은 추운 겨울이었다.




체력검증 - 미친 듯이 달리다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와!” 감탄사보다 “왜?” 의문사가 먼저 나왔다. 하나의 전형을 통과할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중간 단계의 합격은 최종 합격이 아니니까 안심되기보다 더 큰 걱정을 낳는다. 이번에는 면접 전형이다. 무수한 면접 자리를 경험했지만 지금 내가 백수인 이유는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나 마나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 안 좋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면접에 보기 전에 체력 검증을 받고 그 결과서를 면접 보는 날 제출해야 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체력 검증을 한 적이 없었다. 위험 상황에 체력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무슨 생각으로 체력 검증을 받으라는 건지. 그렇게 일이 고된 건지. 의문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체력 검증을 하는 날은 애매한 오후. 대충 라면을 끓여 먹고 검증 장소인 한 대학 센터에 갔다. 평가 항목은 6개로 백분위 점수가 20점 이하면 불합격 처리되어 면접을 볼 수 없었다. 지구력, 순발력 등 다양한 평가 항목이 있었고 악력 측정, 윗몸 일으키기, 유연성 검사, 오래달리기 등 여러 가지 종목을 쉬는 시간 없이 했다. 점수 미달이 될까 한 종목마다 전력을 다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바로바로 다음 종목으로 넘어가니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오래달리기였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앞에 보이는 불이 꺼지기 전까지 반대편을 찍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는데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불이 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기에 오래 달릴수록 더 빨리 뛰어야 했다. 말 그대로 오래달리기이기 때문에 체력과 속도 조절이 필수다. 혼자 달리지 않고 여러 사람이 달리는 이유는 시간 절약의 이유도 있겠지만 일종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리는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람이다. 옆에 있는 사람은 모두 경쟁자다. 처음부터 빨리 뛰지 말라는 검사관의 말은 금방 잊어버리고 어느 한 사람이 1등으로 달리겠다며 빨리 달리자 남은 사람도 질 수 없다는 듯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처음부터 불필요하게 힘을 낭비해서 그런지 지치는 속도도 빨라졌다. 하나둘씩 못 달리겠다고 포기하더니 남은 건 나 하나였다.


돈도 못 버는 사람이 제 건강은 유지하겠다며 수시로 운동장을 뛴 덕분이었다. 고통을 즐기자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처음에 괜히 빨리 달렸다고 생각하며 몇 번 더 뛰고 힘에 겨워 포기했다. 점심으로 먹은 라면이 올라올 것 같았다. 괜히 라면을 먹고 가서 이렇게 몸을 괴롭히는구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집에 오는 동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점수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불합격될 점수는 없었다. 




면접 - 차라리 진행자가 되자

아침에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대전에 있는 코레일 본사에 갔다.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인데 이를 불참하고 가는 마음은 너무 불편했다. 면접을 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합격의 연속에 내 안에 패배 의식이 자라나 있었다. 3일간의 면접 일정 중 나는 첫 번째 날에 갔다. 사람이 많아서 3일 동안 면접을 치르는 것일 텐데 과연 내가 될까? 면접 준비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으며 마음을 붙잡았다.


대전 터미널에 도착해 끼니를 대충 때우고 버스를 탔다. 대전에서 시내버스를 타 본 적이 없으니 길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반대편 버스를 타는 바람에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빨리 내려 택시를 잡고 본사로 향했다. 하마터면 도착 시간에 늦을 뻔했다. 


대기 장소에서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긴장을 풀려는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또 다른 대기 장소에 갔다. 이곳에서 조를 배정받아 면접 장소로 가는 것이었다. 5인 1개 조였는데 우연인지 아까 대화를 나눈 여자가 같은 조에 있었다. 자기 선배가 이것저것 정보를 공유해줬다는데 개별 질문 말고도 토론 면접을 한다고 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말이 끊어지면 감점이 있을 테니 어떻게든 토론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면 조원 모두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하며 인사를 꼭 해서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단다. 자기가 하나, 둘, 셋을 외칠 테니 그때 하자는 것이었다. 무슨 아이돌 그룹도 아니고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다 동의하는데 나만 반대할 수 없어 그리하기로 했다.


면접실에 들어가 미리 맞춘 대로 당차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공정성을 위해 우리의 이름은 숨겨졌고 미리 주어진 번호가 우리의 이름이었다. 마치 수감 번호 같았다. 처음에는 공통 질문을 던져 시계 방향이나 반대 방향 순서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자기소개서를 보기보다는 그 자리의 즉흥적인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할 때 고개를 갸우뚱해서 망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했다. 


다음으로는 토론 면접. 하나의 주제를 던지면 그걸로 토론을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는 노인 무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주어졌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대기실에서는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고 내게 강조하더니. 이러다 다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진행을 했다. 먼저 생각을 말하고 한 명씩 지목하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머지도 그때 정신을 차렸는지 내가 지목할 때마다 대답했고 나는 이를 요약하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넘겼다. 토론보다는 수다에 가까웠다. 


기나긴 면접을 마치고 방에 나왔을 때 같이 면접 봤던 이들은 상기되어 있었다. 너무 좋았다면서 합격하고 만나자며 각자의 길로 떠났다. 정말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철도적성검사 – 전혀 기쁘지 않은 합격

또다시 합격. 숨이 끊어질 듯한데도 계속 살아남는 것을 보며 어쩌면 인턴만이 아니라 정직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독한 인연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됐다. 덤덤했다. 적성검사를 보러 의왕에 있는 인재개발원에 오라는 말을 듣고 이마저도 쉽게 통과하는 것은 아닐지 허풍 섞인 여유를 부렸다.


인재개발원에 가니 같이 면접 봤던 사람들이 있었다. 단 한 명만 빼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적성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오면 이전까지 잘한 게 아무 소용없다는 말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각종 아이큐 테스트 같은 문제들과 내 심리, 성향을 테스트하는 질문 등 다양한 문제를 풀었다. 이 검사가 좋았던 이유가 한 가지 있는데 질질 끌지 않고 내가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바로 결과 통보한다는 것이었다. 정상 결과를 보자마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결국 결승점까지 도착했다. 이제 인턴 생활을 하면 된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이 마냥 좋지 않았다. 왜 내가 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은 일은 이렇게 잘 풀리는 걸까. 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인생이 과연 즐거운 것인지. 알 수 없는 공허감에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합격, 불합격의 선택을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인턴 오리엔테이션 – 인턴 생활의 시작

다시 대전에 갔다. 지난번과 똑같이 버스를 타고 갔다. 웃긴 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잘못된 길로 갔다. 다시 택시를 타고 겨우 도착했다. 


이것저것 교육을 하는데 강당에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앞에 있는 스크린을 보며 몇 시간 이야기를 들으니 졸리고 엉덩이가 아파 혼났다. 그래도 다들 인턴이라고 경청하는데 속으로는 나처럼 힘들었을 것이다.


근무지가 결정되었는데 나는 구로역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됐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먼 것도 아니기에 출퇴근하는 게 아주 힘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야 OT가 끝났다. 대전에 유명한 빵집 성심당에 가고 싶었는데 면접을 같이 봤던 사람이 자기 집이 대전이라면서 길잡이를 자처했다. 대전역에서 걸어가도 될 정도로 그리 멀지 않았다.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각자의 삶을 나눴다. 다른 회사에 다니다 이곳으로 이직을 준비했다는 말을 들으며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다른 데서 인턴 생활을 할 테지만 꼭 최종 합격해서 다시 보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이제 잠깐의 교육을 다시 받은 뒤 정말 근무지에 배치된다. 산하나 넘으니 또 산이 기다린다. 정규직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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