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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l 06. 2021

숨겨왔던 나의

복면 레슬러들의 속사정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 가면에 표정을 넣어 감정을 표현했다. 복면가왕, 복면달호,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 많은 사람이 복면을 쓴다. 이 사람들은 왜 복면을 쓸까? 복면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전쟁에서 위압감을 주기 위해 썼고 저항의 의미로 쓰기도 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나온 웃는 얼굴 가면은 각종 시위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심리학적으로는 본성과는 다른 가면을 쓴다거나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왜 그렇게 가면을 쓰는 것일까. 당연히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체를 숨기고 익명이 보장된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한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그러기도 한다. 본심을 털어놓지 않는 한 온전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다.


가면을 쓰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대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반칙왕>과 <나쵸 리브레>에 등장하는 두 명의 레슬러도 그렇다.


반칙왕


은행원 대호(송강호)는 항상 부지점장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부지점장의 헤드록에서 벗어나고 싶은 대호는 우연히 찾은 체육관에 가서 레슬링을 배우게 된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맹훈련과 시합. 대호는 판이 짜인 시합에서 반칙을 활용하는 레슬러가 된다.


나쵸 리브레


레슬러를 꿈꾸던 이그나시오(잭 블랙)는 가톨릭 수도원에서 주방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수도원의 재정 때문에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줄 수 없다. 그런 이그나시오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레슬링 시합 포스터. 동네 주민 에스쿠에레토와 팀을 이뤄 대회에 나가 출전한다.



이들은 시합에 나갈 때 복면을 쓴다. 현실에서는 무시의 연속이지만 복면을 쓴 나는 본 사람들은 환호한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새로운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며 4단계로 존경에 대한 욕구를 말한다. 그만큼 인간은 누군가에게 존중받고 싶어 한다. 세상에서 무시당하는 대호와 이그나시오는 링 위에서는 환호받는다. 평상시에는 무시를 받는 데다 이 일을 하는 자신에게 날아올 눈총이 걱정됨에도, 세속적으로 폭력적으로 여겨지는 레슬링은 수도원의 금기고 어기면 퇴출임에도 대호와 이그나시오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이유다. 은행원과 수도승, 깨끗해야 한다는 인식을 받는 이 사람들이 폭력적인 경기에서 지저분한 방식으로 승리를 추구한다. 이들의 모습은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저항으로 다가왔다.


상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가면 속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레슬러에게 복면 속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수치다. 비단 레슬러의 일만이 아닐 것이다. 감추고 싶은 것이 드러나면 수치심을 느끼는 게 사람이다. 대호와 이그나시오는 억지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고 흥분한다. 나는 그 모습이 모두 분노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 그들이 보이는 모습들에서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숨기고 새로운 나를 보이기보다 나를 숨기지 않고 또 다른 나를 드러냄으로 해방감을 느낀다. 이제 그런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자신의 이미지와는 다른 성격과 직업을 가진 또 다른 나로 활동한다. 인기 개그맨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 되고 댄스 가수 ‘유두래곤’이 되며 기획자 ‘지미 유’가 된다. 대중은 이들이 모두 유재석이라는 것을 알지만 동일인이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너나 할 것 없이 ‘부 캐릭터’라고 대놓고 드러내며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더는 숨길 일이 아니다. 여러 일을 할 수 있음에 경제적 벌이도 쏠쏠하고 자아실현도 할 수 있어 오히려 권장하고 격려한다. 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표출하는 것을 뜻하는 ‘멀티 페르소나’는 이제 하나의 존중받는 문화가 되었다. 



대호와 이그나시오에게 복면을 쓰는 일은 처음에는 나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끝은 뜨거운 열정으로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만일 이들이 지금, 이 순간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라볼까? 아마 반전 이력을 가지고 있다며 더욱 주목하지 않을까. 은행원 출신 레슬러, 수도사 출신 레슬러.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현실에도 제1의 나만이 아닌 제2, 제3의 나로서 사는 수많은 대호와 이그나시오가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대호와 이그나시오들이여. 숨기지 말고 더욱더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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