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귀여운 변명
“아니 그게 아니고….” 자신을 향한 장난의 화살에 허둥대며 봇물 터지듯 말이 나온다. 그는 대한민국 농구계에서 국보 센터라고 불렸고, 별명에 걸맞게 엄청난 기록을 남겼던 서장훈이다.
농구로 이름을 날린 그를 이제 농구장보다 더 자주 만나는 곳은 TV 속이다. 내 기억 속 서장훈의 모습은 시합에서 집중 견제당해 심판에게 자주 짜증을 내던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방송에 나와 ‘인사만 드리러 나왔다’, ‘의리로 나왔다’는 말로 방송 출연의 이유를 둘러댄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자신은 예능인이 아니라는 말과 달리 고정 출연하는 방송이 점점 늘어났다. 어쩌면 이제 농구인 만큼 예능인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그에게 정말 방송에 욕심이 없는 것인지 그를 보면 궁금증과 함께 웃음이 나온다.
다양한 CF 촬영을 섭렵하고 있으며 평일 밤부터 주말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그의 행보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었다. 하지만 선수 시절 서장훈은 안티 팬이 많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 농구 사상 강력한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상대 팀의 강한 방어를 견뎌야 했고 심판의 판정에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장훈은 항상 투덜대고 짜증을 냈다. 그런 그를 따라다닌 것은 안티 팬들의 공격이었다. 거인 센터는 인터뷰마다 “아니 그게 아니라”를 말하며 해명했다. 유창한 변명을 들으며 들었던 생각은 ‘말은 잘하네’였다. 그렇게 듣기 싫던 그의 변명이 이제 재미있다며 넘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변명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변호이면서 진실을 숨기는 거짓말이기도 하다. 카이사르를 살해한 브루투스는 “나는 카이사르보다 로마 시민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고 살해 이유를 말했다. 그가 정말 로마를 위해 한 행동이었는지 아니면 권력 욕심에 한 행동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변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변명을 들으면 개운하지 않고 답답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변명은 귀여운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우리 집의 서장훈, 엄마 때문이다. 집에서는 막내인 나는 먹고 싶은 게 생각나면 사달라며 아이처럼 떼를 쓴다.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떼를 쓰지 말라는 구박이었다. 섭섭함을 느끼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먹고 싶다고 말한 것이 이르면 오늘 저녁, 늦으면 이번 주 내에 먹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장을 보시면 내가 요구한 그 먹거리는 바로 사 오신다. 사 온 이유에 대해서는 항상 무심하다. “이게 뭐냐”며 모르는 척 물어보면 ‘떨이라서 사 왔다’, ‘내가 먹으려고 사 왔다’고 말씀하신다. ‘네가 먹고 싶어 해서 사 왔다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기분이 좋다. 엄마의 변명이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색이 변하는 카멜레온처럼 변명도 다양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서장훈의 변명은 이제 귀엽게 들린다. 예능이라는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공간에서 도가 지나치지 않은 변명을 했기 때문이다. 서장훈의 변명만큼 엄마의 변명도 귀엽다.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예능인인 듯 예능인 아닌 서장훈 같은’ 어머니의 말에서 답답하다는 느낌보다 포근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진심보다 속 보이는 귀여운 변명이 더 정이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