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것이 성실일까
내가 손에 붙들고 있는 수첩에는 항상 오늘 할 일이 적혀 있었다. 임무를 해결하듯 하나하나 끝낼 때마다 적힌 내용을 지웠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무조건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다. 남들은 내 모습을 보며 ‘성실하다’고 말했다. 내겐 강박이었을 뿐 그것을 ‘성실’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장점이 뭡니까?”라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나는 성실을 내세웠다. 주어진 일에 어정쩡한 마무리가 아닌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는 것. 꾸준하게 내 일을 하는 것. 강박이라고 여겼던 것을 장점으로 내세운 것이다. 모순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내게 한 말을 믿고, 장점이라 말했다.
장점이라는 것은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고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성실은 내가 자신 있게 내세울 게 아닌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오늘 할 일을 지워나가는 일은 장점으로 보기보다는 내가 일에 임하는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따지면 내 기준은 너무 엄격하진 않았나 생각해본다.
사람은 기준과 생각이 다르다. 내겐 100이었던 것이 남에겐 50, 150이 될 수 있다. 그것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별 모양의 틀을 갖고 있는데 정사각형, 원 같은 형체를 품으려 하면 다 담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가능성을 망가뜨리고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 지독한 기준은 단체 생활에서 많이 드러났다. 특히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나처럼 할 것을 많이 강요했다. 정해진 규칙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는 생각. 군 생활 중 내게 가장 중요한 신념이었다. 내게만 적용한다면 문제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군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언제나 입에 담았다. 내 생각을 강조할 수 없음에도, 내 기준을 강조하고 요구하진 말아야 함에도 ‘나는 하는데 왜 너희들은 못 하느냐’고 말하며 남을 정죄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사람은 천차만별인데 기준만 높이 갖고 있다면 이를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성실하지 못하다고 등 돌리는 것보다 끝까지 완주하도록 응원과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내 묵은 강박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떤 방법이든, 어떤 속도든 어쨌든 해냈으니까 말이다. 조금은 마음 편히 지켜보는 법도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