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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l 28. 2021

시간아 천천히

6살 터울 누나의 시간은 항상 나보다 빨랐다. 집에서 세상모르며 놀 때 누나는 학교에 다녔다. 누나는 한 단계씩 높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녔고 그 과정을 따라잡으면 대학교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했다.


누나가 부러웠던 것은 방학이 빠른 것이었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 학교에 가야 하는 나와 달리 누나는 이미 방학을 맞이했다. 나는 한, 두 달은 더 다녀야 방학인데. 억울한 것은 개학도 내가 더 빨랐다는 것이다. 방학이 부러웠던 이유는 단지 학교에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이 갖고 싶었다. 물론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남은 시간은 노는데 다 썼지만, 그 이상으로 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내 시간이 많으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할 일을 마쳐도 시간이 남아버리니까. 아이들이 시간이 안 간다고 하는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시간이 너무 천천히 갔다.


이와 다르게 요즘 나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다 내 계획에 미치지 못한다. 내 게으름 탓인가 생각이 들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는데도 그렇다. 취미 생활이란 것을 한 지 너무 오래됐다. 정말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은 온전히 거기에 쏟거나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 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간다. (그렇다고 시간이 빨리 가는 게 꼭 나쁜 것만 같진 않다. 괴로움이 많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가버리면 그만큼 곱씹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게 없어 허망하기도 하다. 되새기며 보내고 싶은 시간도 있으니까)


시간은 금이라는 게 상투적이지만 늘 와 닿는다. 그녀만큼 유용하게 쓰진 못할지라도 헤르미온느의 시계가 유독 탐나는 요즘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아 어찌할 수 없는 시간. 그냥 천천히 가달라고 입으로만 되뇌며 초조한 마음을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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