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프렌즈>를 보고
채널A <하트시그널>은 파급력 있는 방송이었다. 히트작 없던 채널A에 많은 눈을 돌리게 했고 이 여파로 비슷한 시기에 연애 관련 방송을 제작하게끔 했으니. 이 방송을 보면서 언젠가는 올스타전이나 패자부활전 같은 형식으로 나올 것 같다며 이 조합, 저 조합을 상상했던 적이 있다. 상상대로 <하트시그널>의 후손이라 할만한 <프렌즈>가 나왔다. 전편을 다 보긴 봤다. 예전에 간접적으로 느꼈던 미묘한 감정들에 대한 의리, 보답에 가까웠다.
재미있었던 것은 연예인과 일반인 사이인 ‘연반인’에 가까워져 버린 출연자들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는 점, 방송을 보며 내 마음대로 규정해버린 그들의 캐릭터가 아닌 일상 속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진짜 성격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물론 연기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프렌즈>는 0%대 시청률로 마무리되었다. 전작들과 다른 차가운 반응이었다. 기존 출연진이 모두 나왔던 것은 아니지만 이슈몰이했던 출연자들이 대거 나온 이 방송의 열기가 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제한 없음’으로 본다.
예능 프로그램에는 여러 제약이 많이 걸린다. 그래야 제한된 상황 속 돌발적이거나 번뜩이는 일들이 생길 수 있다. 그때 불편하면서 긴장되는 상황에서 뭔가 이루었을 때 쾌감, 이루지 못했을 때 아쉬움 등이 나타난다. <하트시그널> 또한 연애라는 감정 폭발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황에 여러 제약을 걸며 이를 극에 다다르게 하고 시청자에게 간접 체험시키며 재미를 줬다. 하지만 <프렌즈>는 이 모든 게 하나 없는 마음 편히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음 편히 볼 수 있을 때 즐거운 방송과 그렇지 않을 때 즐거운 방송이 있는데 <프렌즈>는 처음부터 그 방향을 잘못 잡았다.
<프렌즈>는 시공간의 제한이 없었다. <하트시그널>은 주어진 기간 동안 같은 집에서 합숙하며 미묘한 감정을 나눈다. 한번 달궈졌다 식어버린 돌은 다시 뜨거워지려면 다시 달궈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돌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거사(?)를 치르고 난 이들은 식은 지 한참 되어버렸다. 게다가 편집의 문제인 건지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으로 느껴졌다. <하트시그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이 변하는 모습을 시청자도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프렌즈>는 이들의 감정이 어떤지를 편집자의 편집, 구성이 이끄는대로 해석하게 되니 다른 관찰 예능과 다를 바 없게 되어버렸다.
<하트시그널> 속 인물들이 함께 사는 ‘시그널 하우스’는 감정 증폭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프렌즈>에서 출연자들은 각자의 집에서 산다.(그것도 대부분 으리으리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각자의 집에서 사는 이들에게 감정 교류는 쉽지 않고 그걸 보는 사람들의 기대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프렌썸’이라는 애매한 관계 정리는 그 애매함에 더욱 못 박아 버리는 일이 됐다.
사람의 제한도 없었다. ‘새 친구’라는 이름으로 여태 보지 못했던 출연자가 나왔다. 눈길은 끌었지만 과연 이 사람은 왜 나오는 것인지 어떤 과정으로 이 사람이 나오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하트시그널>에서는 메기라는 요소를 활용해 잔잔한 연못을 휘젓는 역할을 하게 했다. 하지만 어디서 유입되는지 모르는 수입산인지, 국산인지, 양식인지, 자연산인지 모르고 메기라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존재와 역할이 불분명한 출연자의 등장은 긴장감과 큰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
여기에 제한을 두어야 하는 논란(음주운전, 학교 폭력 등)의 출연자들을 마음껏 활용했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더 재미가 없었을 테고 이슈를 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전작에서 보여준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활용한 것인지 그냥 눈과 귀를 막고 활용한 것인지. 조금 이목을 끌었지만 그 효과는 미비했다. 사랑이 아닌 우정이라는 주제에서 이들에게 느껴야 하는 마음 설렘이 풀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장르의 제한도 없었다. 시트콤을 노렸던 것인지 아니면 MBC <나 혼자 산다> 같은 출연자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싶었던 것인지. 강렬한 연애에 몰두하게 했던 이전과 달리 너무 다양한 요소를 담으려 하다 보니 가지고 있던 특색마저 사라진 방송에 흥미를 느끼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률이 좋았다면 방송이 더 제작되었을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결말은 썰렁하고 허무했다. 결과적으로 <프렌즈>는 <하트시그널>처럼 사랑으로 끌고 가든지 아니면 다른 방송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예능 형식이었어야 했다. 같은 형식의 방송이 지금 너무 많을뿐더러 그 방송에는 이들보다 예능 분위기를 훨씬 잘 이끄는 연예인들이 많다. 방송 내용도 비슷한데 재미도 떨어지는 이 방송을 보는데 시간을 할애할 시청자는 별로 없었다.
<프렌즈>의 성적과 상관없이 <하트시그널>은 <도시어부>와 함께 채널A의 간판 격인 프로그램이 되어버렸으니 의지가 있다면 차기 시즌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비주얼, 스펙 등 눈에 띄는 요소를 활용해 비현실로 느낄 법한 연애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편 가득한 세상에서 그 주관만 밀고 나간다면 <하트시그널 시즌4>가 나온다 해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