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과 취업 속에서
“내가 저 눈꽃 같구나.”
수능 시험을 보고 집에 돌아오던 날. 흩날리는 눈을 보며 이 말이 나왔다. 고등학교 생활 내내 누구하나 어떻게 준비하라는 조언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책상 앞에 앉아만 있었다. 그 결실을 단 하루에 맺어야 했다. 그래서 어리둥절했고 어색했다. 긴장과 좌절로 보낸 시간들이 끝나면 개운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남는 것은 허무함이었다.
눈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하늘에서 하얀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면 감회가 새롭지만 녹아버리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니까. 내 수험 생활도 저렇게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시험이라도 잘 봤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음을 시험시간 내내 느꼈기에 허무함이 내 몸을 에워쌌다. 집에 도착해서 가채점을 하던 나는 이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이미 끝난 시험인데, 훌훌 털어내지 못하고 누워서 이불만 걷어차다 잠들었다.
입시만 끝나면 나는 꽃이 만개할 줄 알았다.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험은 대학 이후에도 반복됐다. 며칠을 고민하고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는 자기소개서. 하나라도 더 맞추고 싶다는 생각에 수많은 책을 뒤적이며 공부했던 문제들. 좋은 인상을 남겨 꼭 합격하고 싶다는 간절함에 준비했던 면접들. 살 떨리는 긴장 속에서 나는 나란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꽃이 피기는커녕 봉오리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봄의 벚꽃처럼 쉽게 꽃을 피우고 아름다움을 뽐낸다.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아무 생각 없이 청소기를 돌리는데 계속해서 발밑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신경 쓰였다. 오래된 청소기는 작은 먼지 하나 빨아들일 힘도 없나 보다. 그 모습이 나를 비추는 것 같았다. 꽃 피우지 못한 채 힘없이 녹아버리는 눈꽃 같다 느꼈던 10년전 내 감상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것처럼.
잡념을 떨치려 바람을 맞으며 걷던 중 나는 흩날리는 눈을 보았다. 10년 전 눈을 보던 생각이 났다. 내가 바라는 대로 일을 이루지 못한 채 잊혀버린다는 것. 그게 얼마나 쓸쓸하고 고통스러운지. 다시금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리 보기로 했다. 온전히 받아들일 수 는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만약 눈꽃이라면 저 눈발처럼 바람에 날리며 하늘을 수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기를 잃은 채 사라져버리는 것부터 걱정하는 것은 이르지 않겠느냐고. 누군가에게 잊힐 생각으로 무기력하게 어쩔 수 없이 해왔던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만약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다시 하늘에서 꽃을 피워 내려오지 않겠는가.
나 역시 꽃이다. 비록 거리를 수놓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아름다운 꽃은 아닐지라도, 색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봄을 한 해 동안 기억하게 하는, 그런 꽃은 아닐지라도. 겨울 하늘을 수놓는 눈꽃이다. 만일 흩날리는 내 꽃잎에서 붉은 빛이 조금이라도 돈다면 분명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기에 숨이 차올라 달아오른 내 모습을 비췄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