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털로 가늠하는 내 인생

by 와칸다 포에버

군대에서 무심코 쓴 독후감 덕분에 여단장 표창을 받게 된 적이 있었다. 수여식 전날 밤 당직사관이 복장 점검을 받았다. 그때 당직사관은 나와 나름 친했던, 애정 표현을 폭력으로 하던 중사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한 대 쥐어박더니 내게 코털을 정리하라고 했다.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정리해본 적이 없었는데 콧속에 있는 털이 많이 삐져나왔었나 보다. 그때부터 코털에 신경을 쓰게 됐다.


이후로 코털은 나를 돌아보게 되는 존재가 되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괜히 코털이 나온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된다. 코털 정리하는 기구를 사용했는데 잘 다듬어지는 것 같아 뿌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듬어진 코털은 시간이 지나면 이전보다 더 잘 자라고 훨씬 많이 삐져나왔다. 마치 군대에서 예초 작업을 하는 느낌이었다. 예초기로 풀을 정리하면 그날은 깔끔해 보이지만 며칠 지나면 허리 가까이 다시 자라나 있는 풀을 볼 수 있었다. 그때와 같은 이치로 코털이 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털이 너무 많이 자라 애니메이션 <무적 코털 보보보>의 주인공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삐져나온 코털을 뽑아 없애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 생각이 드는 것도 코털 때문이다. 아직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나지 않았는데 코털 몇 가닥이 벌써 점점 끝에서부터 하얗게 색이 바래고 있다. 완전히 흰 코털은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거울을 통해 끝만 살짝 하얀 코털을 보면 괜히 이물질이 코에 낀 것 같고, 나이 들어 보이기도 해 유독 신경이 쓰인다.


코털 때문에 우울한 마음이 들어 생각이 급발진한다. 사람 인생은 유한하며 내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코털을 보며 느끼게 된다. 누구나 유색의 찬란했던 시절이 하얗게 바랜다. 하얀 것이 나름대로 분위기 있어 보이지만 보고 있으면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언젠가 나도 그렇게 색이 바래고 세상을 떠날 것이다. 자연의 순리는 따르는 것이지 내가 결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는 몰라도 어떻게 살다 죽을지는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코털을 보며 생각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내게 코털은 인생을 가늠하게 하는 가늠자다. 코털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처럼 남들과 다르게 살 수도 있고 색이 바래는 것처럼 생기를 잃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 돌아볼 것이다. 코털아. 그래도 조금만 자제 좀. 아니면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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