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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28. 2021

나를 설레게 했던 것

한국어 시험을 공부한다고 수능 언어영역 책을 사서 보는 중이다. 문학 작품 관련 문제를 많이 풀어보고 싶어서 산 EBS 수능특강 책에는 광고가 있었다. 대학교 입학 모집 안내였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환하게 책을 들고 서 있는 학교 모델을 보며 내 미래를 설계하고 상상했다.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먼 훗날의 일을 그리며 ‘정말 가고 싶다’라고 간절히 바랐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설레던 그 마음이 이제는 아무리 봐도 아무런 감흥 없는 상태가 되었다. 권태기를 초월해 아예 시큰둥해진 커플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설렘을 느꼈던 적이 언제 또 있을까 생각해보니 계절이 딱 맞게 다가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가을 학기 개강이다. 모든 학교 과정 속 새 학기 시작은 언제나 긴장 반 설렘 반이었지만 대학교 다닐 때만큼의 설렘은 아니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평상시보다 조금은 들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학기 초마다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공 공부와 과제, 시험에 점점 지쳐가긴 했지만. 


가을 학기 시작할 때 좋았던 이유는 특유의 공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을 방학 기간으로 보낸 후 느끼는 여름과 가을의 미묘한 공존과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점점 풀려가는 기분 좋게 다가왔다. 따갑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햇볕과 끈적거리지 않는 습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공기는 장시간 학교에 다니는 길이 피곤하지 않았다. 교내 자리 잡고 있는 많은 풀과 나무 덕이었는지 몰라도 바람과 공기가 맑게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새로운 강의를 만난다는 것에서 오는 설렘은 덤이었다.


요즘은 설렌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할 정도로 설레는 것이 없다. 반복된 일상에 잠식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예전에는 특별한 하루를 살았는지 묻는 자기 반박이 내 의심이 틀렸다고 인정하게 한다.


지금 내 감정 상태는 사막화 과정을 겪고 있다. 식물 하나 보기 어려울 정도의 척박한 상황이다. 조금 더 지나면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이 일어날 것 같다. 힘없이 축 처진 나무 화분에 영양제를 꽂듯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추억 팔이뿐이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추억을 먹고 산다는 것이 어쩌면 불쌍한 일일 수 있겠지만 그 추억마저 떠오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더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열심히 머릿속을 뒤적인다. 잊고 있었던 설렘의 기억을 찾고 설렘이란 감정을 되살릴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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