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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an 03. 2022

어렵게 찾아낸 눈물 자극법

나는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내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왜 그리 울었나 싶을 정도로 눈물이 많았다. 눈물이 최고의 무기라고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연기력 뛰어난 배우도 아닌데 울고 싶으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어린아이의 눈물을 이용해 그 당시 얄밉던 누나가 엄마에게 많이 혼나게끔 만들기도 했다) 그때 내 평생 흘릴 눈물의 절반 이상을 소모해버려서 지금 눈물이 잘 나지 않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슬픈 영화를 봐도 감흥이 없다. 뻔한 클리셰라고 느끼며 혀를 찬다. 방구석 전문가, 비평가가 되어버린 것인지 그때만큼은 날카롭고 냉정하다. 내적 괴로움에도 외부 자극에도 눈물이 나지 않기에 내 인생에 눈물은 이제 더는 없을 것 같았다.


아, 울고 싶다. 울고 싶다고 소원을 빌 듯 되뇌어도 눈물이 전혀 나지 않았다. 최근 내 눈은 심한 가뭄을 겪는 땅처럼 메말랐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한 번 시원하게 울고 답답함을 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쑥스럽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런 일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바람과 다르게 비참할 정도로 눈물은 나지 않았다. 가슴에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주변에 펑펑 울며 한을 쏟아내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최근에 눈물을 흘렸다. 남들은 재미있게 보는 TV 프로그램인 <쇼 미 더 머니>를 보면서 말이다. ‘설마 그 장면인가?’ 하면서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울었던 장면을 말하면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나는 임플란티드 키드의 1차 예선을 보면서 울었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누구나 정체를 다 아는 개그맨 김민수의 또 다른 캐릭터인 이 래퍼의 분투가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실력은 실제 잘 나가는 래퍼에 비하면 별거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보였던 간절함이 나를 자극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뭔가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는다는 것을.


그 생각을 시험해보기 위해 내 머릿속을 맴도는 여러 장면을 찾아봤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자전거 타는 방법을 한 중년 여성에게 알려줄 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페달을 밟으며 온전히 자전거 타는 방법을 익히는 모습을 봤을 때 눈물이 흘렀다. 한참 지난 일이지만 2007년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대인배’ 김준영이 5전 3선 승제 경기에서 두 경기를 지고 패배가 거의 확정적일 때 그것을 뒤집어 내리 세 경기를 이겨내며 우승했을 때, 응원 나온 아버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봤을 때 눈물이 흘렀다. 이 경기가 다시 떠올라 영상을 찾아보니 역시 눈물이 펑펑 났다.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책에서 이야기는 삶의 모형이라고 한다. 우리의 인생 항로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소설과 같은 가상체험을 통해 유용한 사회적, 생태적 정보를 얻고, 기술을 연마하고, 전략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그런 허구의 이야기에도 사람은 감정 이입한다. 사랑 이야기, 막장 이야기 등등, 마치 인물들이 실존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그들의 행동과 겪는 사건 하나하나에 반응한다. 웹툰을 볼 때 댓글을 읽어보면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나처럼 가볍게 보는 사람과 달리 만화 속 인물의 행동과 말을 읽어보며 심리와 행동을 분석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 세계에 깊이 빠진 것이다. 그 정도로 이야기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요즘 나는 분명히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다. 여러 고난을 겪는데도 울지 않았던 것은 스스로에게는 조금 더 채찍질을 가하며 냉정하게 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겨내야 한다고 말이다. 말로만 솔직하게 표현할 뿐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 덤덤한 척을 하다 보니 나 혼자만 있는 공간과 시간에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 무뎌져 버렸다. 내 이야기를 다루는 데도 이렇게 미숙하니 나를 표현하는 것도, 나를 다루는 것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눈물을 조금이나마 흘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고 매번 시도 때도 없이 울어버리는 울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할 줄 알고 나를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 <쇼 미 더 머니>를 보며 한 번 더 눈물 흘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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