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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an 09. 2023

얀센의 맛

2021년 6월 14일.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접종을 했다. 내가 맞은 백신은 ‘얀센’이었다. 30대 대한민국 민방위라 자격이 되었다. 나라를 위해 군 복무한 것이 이렇게 대견하게 느껴지다니. 원래 수량이 한정되어 있기에 경쟁이 치열할 것 같아 포기하고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하지만 추가 예약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니 내 마음이 움직였다.


공급자는 생각도 없겠지만 막연히 ‘화이자’가 맞고 싶었다. 보관 방법이 까다롭다 보니 다른 백신보다 왠지 고급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빨리 백신을 맞아 조금이라도 답답한 기운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컸다. ‘아스트라제네카’를 1차 접종한 엄마가 2차 접종을 또 해야 해서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며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얀센이 두 번이나 맞아야 하는 다른 백신보다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한정판, 선착순. 이런 이벤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투지의 끝을 보인다.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이번 예방접종 신청 또한 엄청난 경쟁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치 스타벅스 한정판 사은품 증정 이벤트나 대학교 수강 신청을 방불케 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너무나 수월히 집 앞 병원에서 맞도록 예약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경험을 할 때는 호기심에 가슴 두근거리지만 두려움에 두근거리기도 한다. 독감이나 뇌염 같은 예방 주사는 몇 번이나 접종했지만 이와 다른 백신이 내 몸에 들어온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종종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예방 접종자들의 이상 질환과 사망 소식은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태생이 겁쟁이라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유언장을 남겼다. 내 통장 비밀번호는 XXXX. (몸에 이상이 없자 며칠 안 가 버렸다)


주사를 맞기 위해 내가 간 병원은 어릴 때부터 종종 다녔던 병원이었다. 어릴 때는 잦은 병치레에 방문도 잦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면역력이 생긴 것인지 점점 발길이 줄었다. 오랜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을 보니 세월의 흐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 역시 그랬나 보다. 벌써 민방위냐며 아는 척을 해주시는데 반가움과 민망함이 교차했다.


주의사항을 듣고 바로 주사를 맞는데 주삿바늘이 아픈 것인지 백신이 강한 것인지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묵직함이 팔뚝에 다가왔다. 마치 손 좀 매운 사람이 주먹으로 한 지점만 집중적으로 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밖에 특이한 점은 없어 30분 정도 의자에 앉아 혹시 모를 이상 징후를 기다렸다. 숨이라도 턱 막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접종 후 당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없던 식욕이 생겼다는 사람이 있어 만약 나도 그렇다면 그 핑계로 뭘 사 먹을까 군침을 다시며 고민했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너무 아쉬웠다. 컨디션도 괜찮아 그냥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접종하고 나면 발열, 오한, 몸살 등 여러 증상이 있다는데 몸에 한기가 조금 느껴졌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비하면 덜했던 것 같다. 몸에 조금 힘이 없을 뿐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진 않았다. 이 증상은 다음 날이 되니 온전히 사라졌다. 팔에 남아 있던 묵직함은 일주일 정도 지나 사라졌다. 정도는 팔을 들기 불편한 정도였다.


일주일 간격으로 오던 친절한 이상 징후 안내 문자는 한 달이 지나자 오지 않았다. 비로소 완벽하게 예방 접종 절차가 끝났음을 느꼈다. 백신 접종을 했다고 해서 당분간 마스크를 벗거나 이상 행동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백신을 맞더라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돌파 감염 사례도 있고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나는 괜찮다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백신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나는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최고의 안정제다. 백신 접종하기 전에 이 생각은 의료 사고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최악의 방심이기도 하다. 접종 후에 했던 이 생각은 나를 생각지 못한 고통에 시달리게 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도 그렇다. 나는 아닐 거로 생각하지만 그러자마자 순식간에 감염되어버린다. 하지만 몇몇 이기적인 사람들의 그 마음가짐과 거기서 우러난 행동들이 피해를 키운다. 아니면 다행이고 걸리면 재수가 없는 일종의 러시안룰렛이나 도박 같은 확률 게임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학생들은 학교에 나가 공부하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할 수 없다. 상인들은 제대로 된 장사를 할 수 없다. 코와 입을 가리지 않고 호흡 활동을 한 지 1년이 넘었다. 각자의 자유를 뺏는 것이 바이러스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안 된다. 내가 맞았던 얀센의 묵직한 맛은 다시 느끼고픈 자유에 대한 대가였다. 이 시기를 틈타 접종이 끝난 사람은 자신은 끝났다며 자유를 먼저 누리려 하고 접종하지 않은 사람은 그들의 자유에 무임승차해 마음대로 하다 사태를 더 크게 벌이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진화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키우기도 한다. 이 싸움이 계속 이어진다면 더욱더 묵직한 백신의 맛을 맛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지만,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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