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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Feb 27. 2023

고소의 맛

중고거래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분명 내가 돈 주고 산 것이기에 중고거래는 내 물건을 잃고 그 값보다 못한 돈을 되찾는 것이다. 그런데도 숨겨진 돈을 찾는 것 같은 기쁨이 중고거래에 있다.


중고거래를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분에 넘치게 사람 좋은 거래자는 못 만나더라도 무난한 거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주변의 여러 이야기를 접해보면 일반 사기꾼이나 이런 사람이 실제로 세상에 있나 싶을 정도의 진상을 만나는 예도 있었다. 언젠가 나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내가 진짜로 경험할 줄은 몰랐다.


사고는 중고거래 앱으로 물건을 거래하며 일어났다. 상대가 처음 말투부터 퉁명스러웠던 사람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무례한 사람도 손님이라고 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응대했다. 그 사람이 이름과 연락처, 주소를 남기고 내가 계좌번호를 남기자 앱에서 거래가 되었다는 문구가 나왔고 나는 이를 계좌 이체가 되었다는 뜻으로 알았다. 그래서 바로 택배 접수를 했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접하고 일주일 후 아무리 계좌를 확인해도 들어온 돈이 없어 그 사람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확인 좀 해달라고.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나를 차단했다는 문구였다. 예전 같으면 당황과 황당을 오가며 분개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침착히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고 알아봤다.


가장 나은 방법은 어떻게든 연락을 해 소통하고 합의를 보는 게 최선이지만 이미 차단된 상황에서 창구가 없다면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고 인터넷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절차를 찾아봤다.


이런 거래 관련 고소를 할 때 필요한 것은 증거자료다. 내 입장과 전반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증명할 자료가 필요하다. 앱에 올렸던 매물 정보와 지금까지 대화 내용, 내 계좌 내용을 캡처해 인쇄했다. 신분증 사본도 필요하다는데 이는 나를 증명하기 위한 자료인 것 같다.


경찰서에 가본 일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험악하지는 않았지만, 괜히 분위기에 눌리는 것 같았다. 민원실에 들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도움을 받고 상담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상황 정리를 하고 고소장을 작성한 후 담당 형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인지 형사님은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내가 미리 자료를 준비해서 그런지 상황 파악 후 상대와 통화를 진행했다. 나와는 소통되지 않던 사람이 경찰서의 전화라 그런지 몰라도 전화를 받았다.


왜 돈을 보내지 않느냐는 형사님의 질문에 자신은 물건을 사지 않고 싶으며 현재 물건은 고이 보관 중이라는 황당한 답을 했다. 그렇다면 판매자에게 다시 물건을 돌려줄 방법을 소통해야지 왜 차단했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발을 뺐다. 황당해하는 형사님이 한번 대화를 해보라며 수화기를 내게 건넸다.


어처구니가 없던 상황이라 마음을 가다듬고 통화했다. 물건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그 사람은 내가 자신을 사기꾼으로 몰았다며 되레 화를 냈다. 그러자 형사님이 다시 수화기를 돌려받아 훈계 아닌 훈계를 했다. 물건을 어찌할지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는데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돈을 안 보내고 앱에서 대화에서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내용과 자료가 확실히 있으니 그러면 안 된다는 말에 상대는 잘못은 인정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얼마 안 가 돈이 바로 입금되었다. 너무나 빠른 입금에 허무함이 맴돌았다. 사람들이 경찰은 무서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직접 이야기했더라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들었던 생각은 한 가지였다.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수월히 일이 끝나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의 적은 돈이지만 그 사람이 한 번의 실수이든 몇 번의 장난이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 한 일이었는데 쉽고 편하게 마무리된 것 같았다.


금방 끝나버린 고소의 경험은 짧지만 강렬했다. 피해자든 피의자든 어떤 입장이라도 더는 경찰서에 오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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