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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r 08. 2022

군대에서 연등할 때 봤던 영화

외계인 수용구역의 생생한 취재

군대 취침 시간은 10시다. 위병소, 탄약고 등 경계 근무와 불침번, 순찰 등 근무 때문에 자다가 중간에 일어나야 하지만 그러지 않는 날은 기상나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 잠을 잘 수 있다.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던 청춘들이 입대해서 10시에 잠자리에 들면 그것도 고역 중 고역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아 괴로워하다가 군 생활에 적응하면 밤 10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쏟아진다. 휴가 나가서 제대로 놀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1~2시간 잠을 자지 않을 수 있는데 바로 ‘연등’이라는 것 때문이다. 불교 용어처럼 느껴지는 이것은 정식적인 제도라고 하기에는 불법적이고 불법이라기에는 당직사관이나 당직사령의 허가를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뭐라 칭하기 모호한 녀석이다. 이름이 왜 연등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불을 켜 놓는 것을 연장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군인에게 특별히 공부할 시간이라고는 주말, 공휴일 등의 휴일식사 시간 같은 틈틈이 생기는 휴식 시간밖에 없는데 근무가 없는 병사들은 연등 시간을 이용해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도 한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는 당직사관 허가 하에 연등이 가능했는데 평일 10시 이후에는 공부만 할 수 있었고 주말 10시 이후에는 TV가 있는 곳으로 모여 영화나 각종 방송을 봤다. 예전에도 늦은 밤에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이 있었다. 너무 졸려 자는 사람 빼고는 대부분이 한자리에 모여 누군가 틀어 놓은 콘텐츠를 함께 시청하곤 했다. 월드컵 경기가 있던 때는 우리나라가 새벽에 경기할 때 행정실의 당직사관이 깨워줘서 시청하기도 했다.


디스트릭트 9


연등 시간 중에서 봤던 영화 중 인상 깊은 영화는 <디스트릭트 9>이다. IPTV가 도입되기 전에는 매번 주말의 영화에서 선정한 영화를 봐야 했다. 하지만 군 생활을 한창 할 때 IPTV가 도입되었고 그때부터 병사들에게 영화를 선택할 권한이 생겼고 그 폭이 넓어졌다. 누군가 선택했던 이 영화는 여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충격적인 영화였다.



남아공 상공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요하네스버그 인근 지역 외계인 수용구역 ‘디스트릭트 9’에서 28년 동안 인간의 통제를 받는다. 외계인 관리국 MNU는 무법지대로 변한 이곳을 강제 철거하기로 한다. 철거 책임자 비커스 메르바(샬토 코플리)는 일을 진행 중 외계 물질이 몸에 닿는 사고를 당한다. 이 때문에 비커스는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면서 점점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정부는 변해버린 비커스가 외계 신무기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비커스는 자신이 파괴하려 했던 ‘디스트릭트 9’에 숨어든다.


이 영화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CG와 영화의 진행 방식 때문이었다. CG가 마치 진짜 외계인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외계인의 모습이 왠지 실존할 것처럼 느껴졌고 영화 촬영 방식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게 현실인지 가상인지 혼란스러웠다.


정말 이렇게 생긴 외계인이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지구인은 난폭하고 폭력적이다. SF영화를 보면 외계인들이 항상 호전적이고 지구를 침략하는 역할로 나왔지만, 이 영화에서는 입장이 상반된다. 호의호식하는 지구인과 달리 외계인들은 가난하고 숨어 지낸다. 지구인은 외계인의 발전된 문명과 기술을 얻으려고 하며 외계인들은 마치 한 인종이 다른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것처럼 적개심을 드러낸다. 평등과 평화를 아무리 주장하지만, 인간 역시 욕심과 오만으로 가득한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비커스 역시 밥맛 떨어지는 인물로 보이지만 자신의 외형 변화에 따라 행동과 마음가짐이 변하는 것을 보며 인간이란 자신의 입장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자신도 외계인처럼 배제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보이는 처절한 발버둥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맛이 꽤 쓰고 오래간다.


보는 이마다 영화가 끝난 후의 여운은 다르겠지만 내 안에 남은 기분은 찝찝함이었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의 모습에 대한 표현과 영화 속 징그러움이 내게 역하게 다가왔다. 강자의 무자비함에서 나오는 추함과 약자의 처절하게 느껴지는 벼랑 끝 삶이 눈을 뗄 수 없는 영화임에도 눈을 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결코 영화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영화였고 내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강했기 때문에 생각할 게 많은 영화라고 느꼈다. 연등을 마친 후 며칠간 여운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던 거로 봤을 때 이 영화가 어쨌든 충격적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며 군 전역 후에 후속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도 해봤지만, 한동안 소식은 없었다. 이 글을 쓰며 영화를 검색해보니 후속인 <디스트릭트 10>이 제작 준비 중이라고 하니 또 다른 충격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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