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에 관심을
나는 배우 하정우를 좋아한다. 어느 정도 경력이 되거나 인기를 얻으면 손대지 않을 것 같은 작품에도 출연하고 비중이나 이미지에 상관없이 다양한 인물의 연기를 펼친다. 영화 <추격자>로 영화계 블루칩으로 떠오른 하정우를 보며 너무나 강렬했던 살인자 연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벗어낼 수 있을지 오지랖 섞인 걱정을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걱정을 비웃듯 다른 이미지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 영화는 <국가대표>다.
<국가대표>는 동계 스포츠인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린다. 뻔한 결과도 나오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스포츠의 묘미다. 경기 내용도 재미있지만 경기하기 전후의 이야기나 우리가 볼 수 없는 경기 속 이야기를 알게 되면 더 큰 재미를 얻는다. 특히 비인기 종목은 콘텐츠로 만들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종목 자체를 잘 몰라 각본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해도 예측이 쉽지 않고 여러 해프닝(고난과 설움)이 있어 담을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스키점프는 어릴 적 동계올림픽을 볼 때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하거나 두각을 드러내는 종목이 아니었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 비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 영화의 흥행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확정 후 스키점프를 비롯한 다양한 종목에 투자와 관심이 일었다. 봅슬레이를 소재로 한 외화인 <쿨러닝>의 아류로만 보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다.
1996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결성된다. 스키교실 강사 종삼(성동일)을 코치로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입양인 밥(하정우), 군 면제가 필요한 흥철(김동욱), 재복(최재환), 칠구(김지석), 봉구(이재응)까지. 스키를 탔을 뿐 스키점프와는 거리가 먼 이들은 각자의 희망을 좇아 맨몸으로 훈련에 임한다. 그리고 우연찮게 나가노 동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게 된다.
영화의 초중반은 적당히 웃으면서 편하게 볼 수 있다. 또 대부분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누구도 예상, 기대하지 않았던 대박 결과를 내거나 결과는 아쉽지만 불모지에 씨를 뿌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결말을 예상하게 하고 또 그렇게 끝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면목은 경기의 속도감을 보이면서 나온다. 관객도 실제 스키점프를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그 속도감에 눈물이 찔끔 났고 뻔한 신파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보며 한 번 더 눈물이 찔끔 났다.
비인기 종목은 외롭다. 불모지가 조명받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아름답게 포장되기까지 그 시간은 길고 과정은 험난하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야기가 있어 써먹기는 좋은 소재고 여기에 지원까지 되면 좋지만 순간으로 끝나는 경우도 잦다. 또 금방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다. 한편으로는 이런 반짝 관심이 야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끝까지 빛을 보지 못하는 것도 있으니 뭐가 낫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꾸준한 관심과 응원이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동네 DVD 대여점이 문을 닫으며 싸게 DVD를 내놓았는데 많은 사람이 휩쓸어간 그 자리에 이 영화가 남아 있어 챙겼다. 웬만한 영화를 한번 보면 다시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를 보니 영화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시기로 따져보면 <국가대표> 역시 오래된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 영화에 비해 연출이나 이야기가 부족해 보이지 않는 것, 계속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나온 지만 오래되었을 뿐 오래된 영화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했다. 마침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으니 모든 종목을 관심 있게 보며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해야겠다.